착각, 그 한계
조 은 미
내일모레면 친정 엄마 기일이다.
추석 때도 이런저런 이유로 성묘를 다녀오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겸사 겸사 괴산 호국원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네비게이션을 쳐보니 1시간 40 분 정도의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마음 먹으면 한나절이면 다녀올 거리인데 왜 그리 멀다고만 생각했을까?
일찍 집을 나선다. 다행히 평일이라 고속도로가 번잡하지 않았다.
호국원 묘역에도 단풍이 붉었다.
기억 속에 있는 위치를 찾아 올라가 명패를 보니 아버지 이름이 아니다. 순간 혼란이 온다. '여기가 분명히 맞는데' 메모를 꺼내 확인을 해본다 11303
ㅡㅡㅡ 으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주변을 다 둘러봐도 10303 ㅡㅡㅡ으로 시작 하는 번호 밖에 없다. 생각은 여전히 여기가 맞는데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는 아랫단, 윗단을 돌며 이름을 모두 확인하는 촌극을 연출한다. 샅샅이 훑어도 이름이 없다. 똑 같은 봉안담 모습에 호수도 모르고 아파트 찾는 격이니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관리소에 전화를 걸어도 불통이었다. 마침 성묘왔다 내려가는 분의 도움을 받아 113 03이 1묘역 13 구역 3번 봉안담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제대로 찾을 수 있었다. 알고나니 그리 쉬운 것을. 13이라는 숫자가 왜 13 구역이라는 생각을 못 했을까? 단순히 정확하지 못한 기억에 매달려 여기 어디 쯤인데 하고 헤맸던 자신의 실수가 어처구니 없었다.
오랜만에 두 분의 사진을 뵈니 새록새록 그리움이 솟는다. 돌아가신 후 찾아와서 뵌들 무슨 소용일까? 그냥 자식된 내 도리이고 내 위로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계실 때 마음 편히 해드리고 맛난 것 한 번이라도 더 사드리는 것이 효도지 싶다. 살아 생전 더 잘해드리지 못한 회한에 때 늦은 후회로 가슴이 메인다. 자주 찾아 뵙지 못해 벌어졌던 촌극에도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아무리 무심하기로 묘역하나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다니.
아주 오래 전 그것도 총기 있던 40대 때의 일이 생각난다. 정원
공사를 하고 얼마냐고 물으니 6만원이란다. 주머니에는 그날 아침 남편에게 다른 용도로 받아둔 10 만원권 수표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무심코 꺼낸 수표 다섯 장에 만원 권 지폐 한 장을 얹어 오십일만 원을 육만 원이라고 생각하고 두번 세번 세며 계산해 주었다. 정원사도 아무 말 없이 받아 갔다. 며칠이 지났다. 갑자기 남편에게 받을 돈이 생각 났다. "여보, 당신 나 오십만원 왜 안줘?" 하고 물었더니 "며칠 전에 수표 5장 줬잖아" 하며 어이 없다는 듯 쳐다 본다. 그때서야 "내가 정원사에게 건낸 수표 다섯 장이 오십만원이었음을 깨닫고 사색이 되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을까? 문맹도 아니고 십만 원짜리 수표를 만원 권으르로 착 각 할 수 있는지. 만원 권 수표가 있기나 한 것인가? 가당치도 않은 착각에 도무지 스스로도 이해 불가한 일이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정원사는 왕십리 어디 언덕배기에 살고 있었다. 이혼을 했는지 딸 하나 데리고 형님 집에 얹혀서 살고 있었다. 형수 눈치 밥 먹으며 사는 처지가 딱해 돈을 돌려받기는 커녕 보태주고 와야할 지경이었다. 돈이 궁해 죽을 죄를 지었다며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사죄하는 사람에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냥 돌아오며 그 당시로는 꾀 큰 돈을 손해보고 낭패를 당한 일이 있다. 그 후 몇 번인가 정원 일을 무상으로 해주고 흐지부지 그 일은 일단락 되었다.
사람이 어떤 생각에 갇히면 더이상의 것을 보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힌다. 눈뜬 장님이 되어 번호를 뻔히 보고도 그렇게 헤맸던 바보스러움에 몇십 년 전 웃지 못할 실수가 얹혀 떠오른다.
개인간의 착각은 사소한 분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한나라 지도자의 착각은 때로 전쟁을 일으키는 심각한 양상을 야기하기도 한다.
나이들어 가면서 점점 내 기억에
자신이 없어진다. 이제는 어디서나 고집 세우고 내 생각이 맞다고 절대로 우기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내가 착각할 수 있다고 한 발 물러나 다른 사람 말에 경청할 수 있는 유연함과 너그러움을 가져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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