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잃어버린 것을 찾은 기쁨

조은미시인 2022. 11. 3. 09:11

잃어버린 것을 찾은

기쁨
조 은 미

매주 수요일은 캘리그라피와 하모니카를 수강하는 날이다. 하루에 두 강의를 받는 일이 누가 시켜서 하는 일 같으면 힘들텐데 좋아서 하는 일이니 늘 즐겁고 기다려진다.
지난 주 수요일은 유독 바빴다.
강의 끝나고 하모니카 동호인들과 차 마시고 , 돌아오면서 독감 예방 주사 맞고, 상비약 처방 받아 약국까지 들려 집에 왔다.
며칠 지난 뒤 문득 캘리그라피 도구 넣어다니는 가방에 생각이 미쳤다. 늘 두던 자리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다 두었지? 집안을 샅샅이 찾아도 없다. 그러고 보니 어디다 놓아두고 집에 안가지고 온 것이 틀림없다. 도무지 어디에서 놓쳤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날의 행적을 다시 더듬으며 역추적하여 다녔던 곳은 다 전화로 문의를 해 보았다. 문화원, 커피숍, 마을버스 사무실 ,병원, 약국 아무데서도 그런 습득물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쩜 그렇게 정신 없이 다닐까?
요즘은 손에서 떠나면 곧잘 잊기 일쑤다. 핸드폰도 가끔 식당에 놓고 나오는 때가 있다. 나이테가 늘어가는 어쩔 수 없는 흔적이다. 캘리 도구 준비 하느라 비용도 많이 들었다. 아깝기도 하고 당장 낼모래 수업인데 난감하기도 했다.한참 동안 잃어버린 가방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다행히 약사님이 오래 전 쓰다가 쓰지 않고 있는 도구가 있으니 가져다 준다고 한다. 얼마나 고맙고 반갑던지.
수요일 문화원 가는 길에 못내 아쉬워 커피솦에 들려 이런 물건인데 다시 한번 찾아봐달라 부탁해본다. 잠깐 기다리라더니 내 가방을 가져다 준다. 죽은 자식 살아 돌아온 것 만큼이나 반갑다. 전화로 없다는 대답에 별 기대 없이 그냥 한번 확인차 이말무지로 물어봤는데 이런 고마울 데가. 몇 번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온다.
일주일만에 다시 찾은 가방이 그리 소중할 수 없다.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아마 이제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 이다. 한 번 실수는 약이 되어 늘 가방부터 먼저 챙기게 될테니까.

요즘 이태원 참사로 국민 모두 마음이 비통하고 어렵다. 물건 하나 잃어버려도 이리 마음이 허전하고 아쉬운데 생떼 같은 자식을 하루 아침에 잃은 부모 심정이야 오죽할까 싶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잃어버린 물건은 찾을 희망이라도 있지만 떠난 사람이야 다시 살아올 희망이 있을까!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우리의 안전 불감증은 크게 개선된 것 같지 않다. 사고가 사고로만 끝난다면 그것이야 말로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철저히 사고를 분석하고 다시는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사고가 일어나면 누구를 문책 해야할 것인가를 두고 먼저 책임론 공방으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정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큰 이슈가 터지면 수습하고 사후 방지책을 논의 하기도 전에 잿밥에만 관심있는 알팍한 정치인들의 여론 몰이는 딱하고 실망스럽다. 일각에서는 누구 장관도 물러나야하고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퇴진 운운하며 핏대를 세운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지만 크고 작은 사고에 일일이 대통령이 무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아한다면 임기를 제대로 마칠 대통령이 몇이나 있을까!
어떤 경우건 사고 수습이 먼저다. 일의 처리 후 책임질 일이 있으면 사안의 경중에 따라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순서다. 자리에 따라 책임의 무게가 다를진데 그저 사건만 터지면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흔드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사석에서 혼자 말한 것까지 이슈가 되어 외교 참사로 규정하고 이제 반년 남짓 지난 취임 초기의 대통령 하야를 외친다. 그런가 하면 국가 존립에 대한 위기를 초래한 정작 물어야 하는 전직 대통령의 책임에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최고위층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제 식구 감싸기가 도에 지나칠 정도이다. 사법부의 공식 임무 수행까지 국회의원들이 막아서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렇듯 가치관 혼돈의 이중적인 잣대가 너무나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내 편이면 다 옳고 상대편은 다 그르다는 흑백논리의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집단 이기주의는 이제 그만 지양 되어야하지 않을까?

이태원 참사로 숨진 고인들을 추모하며 명복을 빈다. 유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그러나 슬픔에 편승하여 사고 사망자와 희생자의 구분까지 호도하는 일은 없도록 냉철한 이성과 객관적이고 법리적인  근거에 준하여 최선을 다해 수습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앞으로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일에 총력을 다해줄 것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간곡히당부하고 싶다. 잃었던 것들이 제자리 찾아 돌아와 상식이 통용되는 나라에서 국민 모두가 하나되어 네편, 내편 구분 없이 웃으면서 살 수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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