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비빔밥

조은미시인 2022. 11. 11. 19:50

비빔밥
조 은 미

아침에 일어나 글 몇자 쓰다 보면 훌쩍 시간이 지난다. 벌써 9시가 겨웠다. 배꼽 시계가 신호를 보낸다. 이 나이에 때를 잊고 열중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하다.

서둘러 냉장고를 점검해 본다. 먹다 놓친 나물들이 눈에 띄인다. 어제 지인이 사서 들려준 갈치속젓에 눈길이 머문다.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 점심으로 맛난 고등어 김치찜을 대접 받았다. 워낙 맛으로 유명세가 있는 집이어서 그런지 식사하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소문대로 얼마나 맛나던지! 따라나온 갈치속젓도 밥도둑이었다. 굽지 않은 날김에 싸 먹으니 그냥 밥이 술술 넘어간다. 너무 맛나게 먹는 게 보기 좋았던지 점심 대접 잘 해주고, 갈치속젓까지 사서 들려 준다. 세심하게 챙겨주는 속정이 따뜻하고 고마웠다.

냉장고에서 꺼낸 열무김치, 무나물, 콩나물, 궁채나물, 멸치에 들기름 한방울 넉넉히 넣어 갈치속젓에 쓱쓱 비빈다. 비비는 동안에도 군침이 돈다. 잘 비벼진 비빔밥을 한 술 떠서 입에 넣는다. 이렇게 맛날 수가! 생각지도 못한 환상적 궁합이다. 한 대접을 다 비우고도 숟가락 놓기가 아쉽다. 나물은 나물대로 각자의 독특한 맛이 알싸하게 매우면서 짭쪼름한 갈치 속젓과 어울어져 거부할수 없는 중독성이 느껴진다.
거기다 들기름과 고소하게 씹히는 멸치까지. 그냥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직전의 남아 쳐진 나물들의 재탄생에 '갈치속젓 멸치 비빔밥'이라 이름 붙여 새로운 레시피로 등록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각각 흩어져 있을 때는 별 영향력이 없다가도 같이 모이면 시너지 효과를 내어 각자가 가진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본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찌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각각을 모을수 있기 위해서는 흡인력 있는 구심점과 매개체가 필요하다. 어디서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흩는 사람이 아니라 모으는 사람으로 서기를 원한다. 관계는 서로 상대적이다. 다른 사람의 모남도 둥글릴 수 있는 인격이 되는 사람은 늘 주변에 좋은 사람이 모여든다.

여러 재료를 한데 어우르는갈치속젓같은 화끈하고 매력적인 친화력으로 옆의 사람들을 따뜻하게 엮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자신의 고유한 맛을 잃지 않으면서 서로 비볐을 때 어울려 새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의 순리를 깨닫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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