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행복
조 은 미
그날이 그날인 날들.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날들이 가끔은 지루한 일상이 되기도 하는 전원 생활이다. 아침부터 작은 설레임이 있다. 오늘은 윗마을 영숙씨네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동네 선 잔치가 있는 날이다. 결혼식에 부득이 참석치 못하는 동네 분들을 위한 배려이라라. 며칠 전부터 마을 단톡에 초대문자가 떴다. 점심, 저녁까지 대접한다고 모두 오시라는 넉넉한 인심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아침도 일부러 번기고 연회장으로 향한다. 넓은 마당에 초등학교 운동회 날처럼 큰 차일이 쳐있고 야외 식탁까지 제대로 갖춘 가든 파티가 근사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미리 온 마을 분들의 유쾌한 웃음 소리가 드높다.
들어서는 마당 입구에 비누방울이 꽃처럼 날아 한껏 잔치 분위기를 자아낸다.
큰 테이블에 음식이 뷔페식으로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집에서 손수 만들었다는 음식은 일류 호텔음식보다 정갈하고 맛났다. 마지막 냉커피까지 완벽한 대접이었다. 돌아올 때는 푸짐한 떡 봉송을 집집마다 따로 싸서 안긴다.
두 부부의 평소 덕스런 인품이 느꺼진다. 아니 이런 횐대가 가능한가? 어릴 적 동네 잔치 이후 이토록 정성스럽고 훌륭한 연회는 처음 경험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외숙모 시집 오던 잔칫날이 생각 난다. 온 동네 분들이 술 동이며 식혜, 각종 떡과 과일 광주리를 저마다 머리에이고 지고 들어섰다. 솜씨 좋은 과방쟁이가 과방을 들어차고 앉아 온갖 과일이며 밤, 대추, 곶감, 색동 사탕, 다식, 산자, 전, 고기. 나물 등을 푸짐하게 한 상씩 차려내고 부엌에선 아낙들이 땀을 흘리며 국수 삶아대기에 정신이 없었다. 마당에는 멍석이 펼쳐지고 거나하게 술 취한 소리꾼들이 노래를 부르며 하루가 점도록 동네 잔치가 이어졌다.
추억을 소환하며 오랜만의 사람 사는동네의 따뜻한 가슴들을 만난다. 잘 어울리는 신혼부부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들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오후에는 어김없이 파크치러 나갈 준비를 한다. 전화만 하면 대기조처럼 함께 해주는 벗이 있음도 큰 축복이다. 픽엎하러 나서는데 굵은 빗 방울이 돋는다. 미쳐 피할 새도 없이 양동이로 퍼붓듯 호우가 내린다. 파크를 포기하고 비도 거느릴 겸 차 한 잔 나눌 요량으로 친구 집으로 방향을 튼다. 차 한잔이 길어져 아예 저녁까지 먹고가라 붙잡는다. 아무 때 찾아가도 무람하게 있는대로 소박한 밥상으로 환대해주는 벗의 우정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내 주변엔 왜 이리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지! 저녁을 먹고나니 어두워졌던 하늘이 언제 비왔느냐는 듯 걷힌다. 내친 김에 다시 파크장으로 향한다. 소나기 지난 자리에 물이 금방 삔 구장의 잔디 상태가 공을 칠만 하다.
목표를 겨냥하고 티샷을 날린다. 공을 치자마다 댓바람에 36m 4번홀에서 소리도 경쾌하게 공이 홀 안으로 굴러떨어 진다. 이런 행운이! 홀인원이다. 나도 모르게 환호성이 터진다. 짜릿한 기쁨이 온 몸을 휩싼다.
인생은 늘 그렇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비가 언제 그칠까 싶어도 잠깐 멈춰서 기다리다 보면 지나간다. 세상이 메마른 것 같아도 어딘가 따뜻한 양지가 남아있다.
내가 먼저 비를 피할 수 있는 쉼터가 되고 양지가 되어줄 때 세상은 더 없이 따뜻하고 살만한 곳으로 변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생기로운 일인가!
돌아오는 드리이브 길이 날개를 단 듯 가볍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비어있는 길을 달린다.
감사로 마무리하는 하루.먼지가 씻겨내린 싱그런 가로수의 초록빛이 가슴 가득 들어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