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느림의 미학
조은미시인
2021. 10. 26. 10:32
조 은 미
전철에서 내려 에스카레이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의 근성은 부지런함을 나타내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고치기 어려운 단점으로 비치기도 한다.
두 줄로 타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 한 쪽으로 붙어 걸어 올라가는 사람을 위해 가뜩이나 비좁은 자리를 비어 놓아 아무리 두 줄 서기를 하고 싶어도 눈총이 따가워 한 줄로 서게 된다.
한 쪽으로 쏠리는 하중도 위험하고 에스카레이터 자체가 걸어올라가기 위해서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 1 분도 안되게 차이나는 그 시간도 기다릴 여유가 없이 뛰다싶이 걸어올라가는 조급함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점점 참을성이 없어지고 여유가 없어져 그 소용돌이 안에 휩쓸려 돌아가다 보면 숨이 막힐만큼 쫒아가기가 버거워 쉽게 헉헉 거리게 된다.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일상 생활의 근간이 되던 미덕은 골동품이 되어 폐기처분 된지 오래 되었다.
부부간에도 조금만 의견 차이가 나면 이혼이 능사고 직장도 조금만 힘들어도 박차고 뛰쳐나온다.
하다 못해 층간 소음, 주차 문제로 살인까지 하는 끔찍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서울 오면 편의 시설이 가까워 편하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면 숨쉴 구멍이 그리워지고 시골의 넉넉한 느림 속에 몸을 묻고 싶어진다.
거실에 요전에 시골 집에서 따온 대추가 제 몸의 물기를 삭여가며 말라가고 있다.
수들수들 겉모양은 말라가지만 속은 더 쫀득해지고 햇살 담은 몸은 점점 더 붉어지고 단 맛이 짙어진다.
기다림의 여유를 즐기며 대추답게 숙성되고 익어 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여정에 이제는 느릿느릿 대추처럼 나답게 익어 가며 여유 안에 거할 수 있음에 감사가 넘친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이 이리 유유자적하고 행복할 수가 없다. 젊은 시절은 상상할 수도 없는 호사이다.
시어른, 친정부모, 시누이 까지 한 집에 모시고 아이들 건사하면서 직장 생활까지 1인 몇 역을 감당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온 댓가에 대한 선물임에 맘껏 누리는기쁨 안에 거하려 한다.
제주도 한 달 살이 떠날 날이 다가온다.
내 인생 칠십에 주어지는 안식월!
내게 주는 보너스로 알고 느림 안에 나를 풀어놓고 올 생각이다.
마음 가는대로 아무 목적이라는 것 없이
궂이 왜 가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멍 때리러 간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저 모든 끈을 놓고 멍 때리며 비워진 마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그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느끼는 여유를 채워 더 넓은 가슴으로 돌아오고 싶다.
축복을 주시는 이여 !
영광과 감사를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