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내가 먼저 변해야
조은미시인
2021. 10. 28. 08:04
조 은 미
볼 일이 있어 건대역에서 내려 2호선 연결통로로 걸어가는 중 스치듯 앞서 걸어가는 여인의 머리에 눈길이 꽂힌다.
실크처럼 윤기나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매혹적인 빨간 머리! 염색 머리나 가발이겠지만 천연의 제 머리인 듯 색이 자연스럽고 예쁘다.
얼굴이 궁금하여 쫓아가 흘낏 돌아보니 눈이 큰 젊은 외국인 아가씨의 마스크 낀 얼굴이 얾마나 예쁘던지!
빨강 머리 앤이 연상되어 까닭없이 친근감이 든다.
"You have lovely hair. So beautiful" 하고 말이라도 걸고 싶은 충동을 당황스러워할까봐 속으로 눌러 참는다.
우리 어렸을 때는 삼단 같이 숱이 많고 흑단처럼 새까맣게 윤기나는 검은 머리가 미의 상징이었다.
어쩌다 노란 물을 들인 여인을 만나면 양공주나 양색시라며 미군들과 놀아 나는
창녀 쯤으로나 생각하고 수근대며 경원시 했다.
개성이 존중되는 오늘을 사는 세대와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 만큼이나 생경스럽고 격세 지감이 있다.
지금은 오히려 검은 머리가 촌스러움의 상징이되어 나도 어제 염색을 하며 우정 톤을 좀 밝게 하려고 갈색에 오렌지 색을 섞어 염색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릿지를 하거나 군데군데 탈색을 하거나 보라색 머리, 초록색 머리로 염색한 젊은 이들을 만나면 조금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여졌는데 개성적인 멋내기로 생각이 바뀌니 어느새 빨간 머리도 매력적으로 보일만큼 달라져보인다
시대에 따라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적응하며 살아내기가 힘들다.
의외로 주변에 아직도 가부장적인 관습을 못 버리고 명절 차례나 제사 문제등 가정 대소사에 전통 방식을 고집하며 부인이나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가장들이 많이 있다. 시대에 따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가치 전환의 사고변화를 생각해볼 때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이련 저런 끈으로 연결되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때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로 인하여 피곤 하고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어쩌다 만나는 사람이면 피하고 안 만나면 고만이지만 늘 함께 살아야하는 가족과 사사건건 부딪친다면 그야말로 서로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내가 먼저 변하고 바뀌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다.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부모가 변하기를 바라기 전 내가 먼저 변하자.
며칠 전 친구 모임에서 지금은 목사님으로 목회를 하고 있는 아들의 말썽 많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간증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고1 때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음악에 미쳐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학교 생활에 부적응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아들을 야단치고 못하게 막았더니 뒤로 숨어 점점 더 걷잡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룹 부모들을 만나 설득해 차라리 1년간 하고 싶은 만큼 밀어 주고 그대신 1 년 후엔 공부하자고 아이들과 약속을 하고 믿고 기다려보자고 제안했다 . 다행히 아이들과도 합의가 이루어져 지하의 열악한 연습실도 지상의 좋은 연습실로 바꿔주고 학교 측과도 협조를 구해 축제 때 무대에도 세워주고 1년을 결산하는 음악회도 큰 극장을 빌려 열어 주었더니 아이들이 1년 후 스스로 밴드를 해체하고 모두 열심히 공부해 다 좋은 대학을 들어가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활동한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사춘기 자녀와 갈등을 빚고 있는 모든 부모들에게 성공 사례로 알리고 싶은 실례이다.
상대가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대가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내가 먼저 그렇게 변하는 것이 제일 쉽고 빠르게 변화하는 방법이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행복하게 사는 길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