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가파도 (제주도 한 달 살이 열이레째)
조은미시인
2021. 11. 17. 21:28
조 은 미
오늘의 행선지는 모슬포 운진항에서 5.5 Km 떨어진 봄에 청보리로 유명한 가파도이다.
엊그제 마라도 다녀오며 미리 11시 배시간을 예약해 놓은 터라 아침에 느긋하게 나선다. 운진항에서 뱃길로 10여분 달리니 금방 도착한다.
면적은 약 0.9평방 km, 해안선 길이는
4ㆍ2Km 마라도의 2.5배 정도 크기 섬이다. 2021년 1 월 통계로 126호 정도의 가구에 인구 227명이 거주한다고 되어 있다.
제주의 도서 중 가장 물 사정이 좋고 가오리 모양으로 생겨 가파도라 부르고 하멜 표류기에는 케파트라는 이름으로 소개 되기도 한 아름다운 섬이다.
해안을 면한 마을 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데 대략 1 시간 정도 걸으면 구석 구석 다 볼 수가 있다.
돌담으로 경계를 쌓은 집들과 밭이 정겹고 아늑하고 포근하다.
돌담을 가까이서 보니 돌과 돌을 포개 얹은 사이가 바람이 통할 만큼 틈새가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지켜야하는 경계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친하다고 함부로 내 것 네 것 가리지 않고 무례하게 군다면 서로 피곤하고 상처가 될 것이다.
낮으막한 정겨운 돌담처럼 바람이 숭숭 통하는 담을 쌓으며 상대를 지켜주고 나도 보호하면서 소통의 여유로운 틈새를 내어주며 살아가는 것이 서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런지!
가파도는 대체적으로 평평한 지역으로 오름이 없고 용수 사정이 좋아 농사가 잘 될 것 같다.
보리를 베어낸 넓은 들판이 허허롭다. 봄에 청보리가 물결칠 때는 얼마나 장관일까 상상해본다.
아쉬운 마음 핑계 삼아 내년 봄 청보리 남실거릴 때 다시 한 번 더 와봐야지 싶은 욕심 한자락 남겨둔다.
느릿 느릿 기어가는 시간을 동무 삼아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한가롭게 걸어본다.
바닷 바람이 상큼하고 바람에 실려오는 갯 내음이 싱그럽다. 눈을 돌리는 곳 마다 한 폭의 그림이다.
이 골목 저 골 목 어슬렁 거리며 가파도를 눈에 담는다.
아깃자깃 예쁜 기념품 가게도 눈을 끌고 가파도를 그려낸 담벼락의 벽화도 눈요깃 거리다.
조개 껍질로 예쁘게 담을 꾸민 집도 만나고 폐교된 가파 초등학교도 만난다.
아이들이 뛰놀았을 주인 없는 텅 빈 운동장이 쓸쓸해 보인다.
섬에서 자라는 꽃들은 바람을 피하려는 본능적 방어 기제인지 키들이 작고 아담하다. 육지에서는 후리후리 하게 키가 큰 바늘 꽃이 앙증맞게 앉은뱅이로 피어 있다.
마을의 수호신인 할멍당과 마을 사람들에게 소중한 생명의 근원인 우물도 만난다.
길 옆의 작은 교회 건물도 반갑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출출해진 허기를 만만한 짜장면과 얼큰한 짬뽕 국물로 달래본다.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짬뽕이 엊그제 마라도에서 먹던 맛 보다 못한 뭔가 2% 부족한 서운함이 있다.
점심 후 마을 어귀의 "가파리 212 " 라는 예쁜 카페에 들어가 시간을 내려놓는다.
처음 마셔보는 시원한 청보리 라떼를 주문한다. 구수한 보리맛이 우유와 어울어져 달콤한 목 넘김이 부드럽다.
가파도의 맛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한가하고 느긋하게 가파도의 아름다움과 가을 정취에 취해 가슴 한가득 뿌듯한 행복감을 안고 2시 30분 배로 돌아나온다.
이런 날들을 내 인생에 또 만날 수 있을까? 보너스 같은 날들!
주변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참으로 아름답고 감사하고 고마운 날들이다.
한 군데 더 들릴까 하다가 몸 컨디션을 생각해 일찍 집에 들어와 쉬기로 한다.
달큰한 피로가 몰려온다.
또 하루 감사의 날을 더하며 오늘도 자족한 하루 일과를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