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하나 되는 기쁨
조은미시인
2022. 6. 29. 09:37
조은미
설레임이 파닥이는 아침
새벽 같이 눈이 떠진다.
서울교대 동기들이 운길산역 물의 정원으로 야유회 가는 날이다.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회색 차일을 드리우고 하늘이 내려 앉았다.
비옷과 우산을 챙겨 넣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느리게 기어간다.
샤워 후 화장을 하고 나갈 채비를 다 마치고서도 11시 운길산 역 집결 시간에 맞추어 나가려면 아직 1 시간은 더 남았다.
나이들어서는 행동도 느리고 어떤 돌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넉넉하게 시간 여유를 두고 나서는게 상책이다.
서둘러 상봉역으로 향한다.
회장님께서 주밀하게 경의 중앙선 역사마다 지나는 시간을 자세히 안내해주셔서 상봉역 10 시 16분 기차 시간까지 40 여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느긋하게 화장실도 들리고 간식 시간에 나눌 따끈한 호도 과자까지 챙길 여유가 있었다.
기차에 오르니 여기 저기 아는 얼굴들이 예닐곱이나 눈에 띈다.
운길산역에는 40 여명의 동기들이 속속 모여들어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시끌 벅적 했다.
동기라는 끈은 얼굴 튼지 얼마 안된 친구들도 그새 허물 없이 말이 놓아질만큼 편안하게 서로를 묶는다.
아름다운 자태의 뱃나들이교를 건너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2012년 한강 살리기 산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북한강 수변 생태 공원인 물의 정원은 자연 친화적인 휴식 공간으로 서울 근교의 명소가 되었다.
뱃나들이교 밑으로 잔잔하게 윤슬이 흐르고 앙증맞은 수련의 자태가 새색시처럼 곱다.
바람이 지나는 길에 갈대가 누윘다 일어서며 바람부는 대로 초록 파도가 되어 안긴다.
가슴에도 초록 파도가 일렁인다
흰 망초 들판에도 꽃파도가 인다.
때 없이 내 정원 잔디밭에서 무참히 뽑히우던 보잘 것 없는 잡초일 뿐이었던 너!
아! 이 꽃파도의 정체가 너 였다니!
무리지어 떼로 모여선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압도된다.
자연에 서면 늘 겸허해진다.
뉘라서 이 오묘한 창조의 신비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유월의 푸름 안에 속살을 드러낸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느림의 여유 속에 행복이 서서히 고개를 쳐든다.
길도 좋고 친구도 좋고.
서로의 다름을 품고 하나가 되어 걷는다.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된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처음 보는 친구 몇이 우정 다가와 어쩜 글이 그리 따뜻하고 편안한지 애독자가 되어 내가 올리는 글에 공감하며 행복하게 잘 읽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한다.
요 며칠 이런 저런 이유로 글을 못 쓰고 갈아앉았던 마음에 따뜻한 격려는 생명처럼 귀하고 고마운 선물이다.
작가는 공감을 먹고 커가는 생물이다.
삭막한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나는지!
길을 걷다 만난 넓은 평상에 둘러 앉아 커피와 간식을 나눈다.
하모니카 선율에 실려 촉촉한 시낭송으로 낭만에 젖는다.
따스함들이 모여 너와 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세월에 모난 부분들이 깎여 둥굴어진 모습들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하나가 되어 선다. 마주 바라보는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어린다.
혼자서는 칠십을 넘긴 힘없는 노인에 지나지 않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길은 따사롭고 푸근하다.
여기 저기 구르는 웃음 소리 따라 어느새 마음은 청춘으로 돌아간다.
벗이여!
가슴 속에 서로를 담고 따뜻하게 사랑하면서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남은 날들 동행하는 기쁨으로 멋지게 살아갑시다. 모쪼록 건강들 하시기요.
적당한 시장기가 맛난 찬이 된다.
설설 끓는 뽕나무 닭 백숙에 정담도 익어간다. 녹두와 함께 어울어진 부드러운 닭죽도 혀에 감긴다.
하나가 되는 기쁨! 오랜 시간 고아 어울어져 부드러워진 진 죽처럼 서로에게 편안한 동기들!
세월을 뛰어 넘어 하나라는 유대감은 서로를 세우는 끈이 된다.
화기애애하게 웃고 떠들며 점심을 먹는 동안 한바탕 쏟아지던 비가 용케 멈췄다.
하늘도 제 빛으로 돌아왔다.
다음 달을 기약하며 스트레스 날려 보낸 얼굴들에 웃음꽃이 화사하다.
아직도 니편 내편 땅 따먹기 편 가르며 서로 가시 세우고 사는 여의도 어떤 동네도 상생의 지혜로 하나 되어 협치의 기쁨을 누리며 사는 날 있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