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사람이 온다는 건

조은미시인 2025. 6. 21. 20:15

사람이 은다는 건
조은미

   기다리는 시간은 어찌 그리 더디가는지. 저만큼 내닫는 그리움을 붙들어 세우며 다독인다.
일찍 눈이 떠졌다. 교대 동창회 세미원 나들이 행사가  있는 날이다. 가물었던터라 비소식이 반가우면서도 호우 주의보까지 겹쳐 불안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나뭇가지들이 미친듯 바람에 너울거리고 굵은 비가 쉬 그칠것 같지 않다. 간밤에 바람의 해찰이 심했던지 뒷뜰에 세워놓았던 비치 파라솔이 앞마당까지 굴러떨어져있고 곳곳에 걸려있던 시화들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무심하게 지나쳐 언제  익었는지도 모른 보리수 열매도  땅에 떨어져 원망의 눈빛이 붉다.
아무래도 나서기는 어려운 날씨다. 그래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서둘러 간단히 조반을 챙겨먹고 화장을 끝내고 외출복으로 갈아 입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조바심으로 연신 시계를 보고 있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진다.  이 빗속을 뚫고 운전을 하고 가는 것은 무리이다.  

아쉽지만 포기하기로 한다. 행여 기다릴까봐 못가겠다고  회장에게 통보를 하고 주저앉는다. 못내 서운했다.
마음을 진정 시키려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앉았다.
눈은 여전히 창밖을 향하고 있다. 9시가 가까워지자 빗줄기가 조금 약해지는가 싶더니 나서기 적당할만큼 부슬 거린다. 총알같이 일어나 다시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선다.

  물기를 머금은 가로수 잎들이 생기가 넘친다. 텅 빈  초록 빗길을 촉촉히 젖은 마음으로 달린다. 송정미의 찬양이 흐르고 잔잔한 평화가 온몸을 휘감는다. 고삐 풀린 보고픈 마음은 차보다 앞서 달린다.  양수역에 도착하니 비에도 아랑곳 않고 많은 친구들이 벌써  와 기다리고 있었다. 예서제서 반가운 인사들이 쏟아진다.  함박꽃이 핀 얼굴들이 활기차다. 알록달록 색색의 우산을 펴들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무며 세미원 길을 걷는다. 어쩌면 비도 그리 착하게 오는지!
온통 초록이 익어가는 싱그러움이 우리를 반긴다. 맑은 도랑물이 졸졸 거리는 징검다리 위에  유년이 폴짝 거린다. 아직 연꽃이 피기 전이지만 꽃피기를 기다리는 설레임이 가득한 충만함이 있다. 빗소리에 숨어 꽃님의 발자국이 들리는 듯도 하다. 곧 환희로 뒤덮일 그 장관을 그려본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그 교감의 미세한 떨림이 초록의 싱그러움속에 파닥인다. 연잎마다 동그란 빗방울을 가슴에 보석인양 품고 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 느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다. 비에 젖은 강물에 물안개가 인다. 강물은 모든 걸 가슴에 안은 넉넉한  모습으로 무심히 흐르고 있다.
오래 전  남편과  함께 앉았던 그자리에  선다.
어제인 듯 생생하게 가슴 밑바닥 갈아앉았던 그리움이 고개를 든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중략)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나오는  싯귀 한귀절을 읊조려 본다.
'여보 ,  나 잘지내고 있어. 걱정하지 마.' 물안개 속에 흐려지는 그에게 미소를 보내며 손을 흔들어 준다.
그래 사람이 온단는 건 그렇게 어마어마한 일이다.
이 빗속을 뚫고 달려오고 싶은 건 사람의 가슴을 만나고픈 까닭이리라. 따뜻한 가슴이 그립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친구들을 위해 떡이며 수박, 과일이며 손수건 선물까지 들고와 나누는 사랑에 가슴 뭉클
한 고마움과  감동에 젖는다.
이름을 부를수록 더 가까워지는 벗들. 만남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를 엮는 울타리가 더 든든해짐을 느낀다.  산책 후 연잎밥으로 입이 호사를 한다. 비오는 날이지만 서로의 온기에 따사롭고 행복했던 날!  하하호호대는 웃음에 5 년은 뚝 떼어 두물머리에 흘려보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 사랑하며 산다는 건 이리 행복한 일인 것을.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새록새록 감사가 넘친다.사람이 온다는건 서로의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보듬고 살아가야하리라.
벗들이여 함께 함이 축복이네. 또 만날날 기다리네.  건강하게 지내다 쉬이 또 만세세나 그려.
비가 어느새 멎고 해가 난다. 내  가슴에도 해가 돋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