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 손끝에서
정은 손끝에서
조은미
폭우는 아니지만 비가 끈질기게 온다.
빗소리가 정적을 깨우는 아침 현관문 벨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이 아침에 누굴까?
대문은 언제나 열려있지만 내가 우정 초대한 사람이나 우체부, 반장이 동네 일로 방문하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무시로 대문을 출입하는 이는 거의 없는 편이다.
"누구세요?" 약간은 긴장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아랫집 이웃이 잘 생긴 호박 2개를 금방 땄다며 내민다. 생각지도 않은 호의에 감사하다. 작은 나눔이지만 그 안에 깃든 정성을 생각하면 더없이 귀한 선물이다.
호박 넝쿨 뻗어가는 것이 감당이 안되 아예 호박 심기를 포기했다. 가끔 반찬이 궁할 때는 아쉽기도 하다. 여름 한철 몇 차례씩 따서 챙겨주는 이웃 덕에 그나마 호박 맛을 보고 산다.
주말에만 들어오는 또 다른 이웃이 찐 옥수수 몇자루를 먹어보라고 가져 왔다. 금방 딴 옥수수라 얼마나 맛나던지.
정은 손끝에서 자란다.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식, 하다못해 친구간에도 작은 배려가 사람을 감동시킨다.
일방적인 사랑은 서운함과 때로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받을 것을 기대하고 베푸는 것은 아니지만 가는 정, 오는 정이 서로 길을 낼 때 더 돈독한 사이가 된다.
몇 번을 만나도 일방적으로 커피나 밥 대접 받는 일을 당연한 듯 여기는 사람은 피하고 싶어진다. 자기 차례가 되면 늘
핑계나 이유가 많고 그냥 묻어가려는 체면 없는 사람 주변에는 사람이 붙지 않는다.
사람이 따르는 사람을 살펴보면 다 이유가 있다. 작은 일에 따뜻하게 마음을 여는넉넉한 사람 곁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어도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말 한 마디라도 친절하고 상냥하게 응대해주는 사람 곁에 있으면 푸근하고 왠지 모르게 끌린다.
단톡에 올린 글에 일일이 답글을 달이주지는 못해도 하트라도 하나 눌러주는 정스러움이 서로를 따뜻하게 하고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며칠 전 가족 단톡에 올린 내 글에 아들이 뽀뽀하는 사랑스런 이모티콘으로 답글을 달았다. 평소에 과묵한 편이라 그런 표현에 인색한 편인 아들의 그 간단한 이모티콘이 하루 종일 행복하게 한다.
사랑은 표현 하는 만큼이 사랑의 크기인 것 같다. 말 안해도 알겠거니 하는건 내 희망 사항일 뿐이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믿거라 무심할 경우가 많다.
무심함이 깊어지면 관계에 틈이 생긴다.
지금도 진한 감동으로 늘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시아버님과의 일화가 생각난다
몇 십년 시어른을 모시고 살다 어머니께서 먼저 돌아가셨다. 그 후로 홀시아버님을 10년 이상 모셨다. 하루 일상적인 서너 마디면 족할만큼 아버님은 과묵하신 분이셨다. 그러던 어느해 내가 특정 부위에 근종이 생겨 수술 후 병원에 일주일 정도 입원한 적이 있었다. 과묵하시던 아버님께서 꽃다발을 사들고 병문안을 오셔서 애썼다고 말없이 내손을 잡아주시며 눈가가 촉촉해지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의 사랑이 진하게 가슴에 와닿던 감동의 순간이었다.
남편이 뇌종양으로 오래 병원에 입원 했었다.점점 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언어도 잃어버려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다.
보조침대에 누워 병상을 지키다 깜박 잠이들었다. 문득 손에 힘은 없지만 따스한 감촉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남편이 성한 한쪽 손을 뻗어 내손을 가만히 쥐고 있었다.
사랑한단 백마디 말보다 더 큰 사랑의 무게가 느껴졌다. 지금도 남편을 생각하면 그 때 그 일이 오버랩되어 따뜻한 추억에 젖는다.
손끝에서 나누는 작은 정에 사람은 감동
한다. 진심을 담은 손끝으로 늘 따뜻함을 나누고 사는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