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카르페디엠

조은미시인 2023. 10. 29. 08:35

카르페디엠
조 은 미

  기다림이 있는 삶은 생기롭다.
설레이는 기대로 아침을 연다.  세컨 하우스가 있는 가평 집으로  며칠 전 이사를 하고 아직 짐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터다.어수선함을 밀쳐놓고 서울로 향한다. 서울 집에 이사 오기로한 전세 세입자는 11월
23일이나  되야 들어온다. 비어 있는  내 집에 들어가는 거라  날씨 추워지기 전에 서둘러 미리 이사를 마쳤다. 엊그제까지 살던 집인데 살림이 빠져나간 빈 집은 남의 집처럼 썰렁하고 낯설다.  남겨놓고 간 요와 이불을  펴니 그대로 잘 만은 하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내일  서울교대 8회 동기 모임에 참여하려는 열정이 있는 걸 보니 마음은  아직도 청춘임을  자위해본다. 같은  빛깔로 물들어 가는 편안함이 좋아 이 모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참석하게 된다.
얼굴만 스치고 지났던 친구들도 동기라는 이름 하나로 어느새 세월의 경계가 무너진다. 격의 없이 자주 만나다 보니 오히려 학교 다닐 때 보다 더 친해 진다. 동기 이기에 알게 모르게 느끼던 시새움과 경쟁심도 사라지고 넉넉하게 익어 가는 벗들의 모습이 따뜻하게 가슴을 채운다.  잠실 운동장 역  8시 집합이지만 시간 전에  모인 벗들의 웃음소리가 예서제서  꽃으로  벙근다. 날씨도 한 몫 거든다.  나들이 하기에  더 없이 좋은 청명한 날이다.
  3시간여 달려 문경새재 주차장에 닿는다. 흐드러진  가을이 와락 들어와 안긴다. 은행잎은 어느새  그리 노랗게 물들었는지! 선홍빛  붉은 단풍은 처연하기 까지 하다. 사과도 배꼽을 내밀고 수줍은 듯 볼을 붉히며  하늘을 이고 있다. 눈이 시린 아름다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람쥐 채바퀴돌 듯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계절도 잊고 살았던  무심함에 모처럼 화색이 돈다. 돌돌거리는 맑은 계곡물 소리에 세상 소리에 쩔었던 귀를  씻는다. 나오기만 하면 이리 좋은 것을 . 제 2관문까지 완만한  문경세재의  속살을 더듬으며  가을 빛에 취한다.
마음도 몸도 물이 든다. 한 줌 쥐어 짜면 단풍물이 배어나올 것 같다. 늘 자연의 넓은 품에 안기면 힐링이 된다.
오묘한 창조의 신비 앞에 겸허해 진다.  제 2관문에 도착해 잠깐 쉬는  동안  정일근 시인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를 낭송했다. 오늘 따라  기다림을 노래한 시인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 보지 않겠다. 다시 돌아 오지 않는 허망한 것들에 연연해 하지 말고  새로운 기다림이 있는 희망으로  밝은 내일을  살아가자. 아직 기다림을 내 것으로 소유하는 젊음으로 살아가자.
좀 무리를 해서 많이 걸은 탓인지 무릎에 신호가 온다. 쉬어가는 것을 기다려주며  함께 걸어주었던  일행의 배려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따뜻한 벗들의 우정과 가을을 가슴에 담고 돌아오는 귀갓길이 행복하다.
수고한 임원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늘 아름다운 동행을 꿈꾸며 또 다른 설레임으로 다음 모임을 기대한다. 벗들이여 모두 건강 유의하고 다리에 아직 힘 있을 때 자주 만날 수 있기를.  순간순간 카르페 디엠의 자유함을 누리며 사는 날 들이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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