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3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조은미시인 2023. 12. 9. 13:20

보이지는 않는 것을 보며
조 은 미

  며칠간의  서울 나들이에서 돌아왔다. 몇 차례 공식 모임에 참석하고 짬짬이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관계에서 따뜻함을 느끼는 것 민큼 사람을 생기롭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묵은 인연들과 만나 나누는 정담이 가슴 속까지 푸근하게 한다.  오랜만에 딸네 집에서 묵었다. 아마 시집 보내고  처음인 것 같다. 서울에 살 때는 가끔 만나 식사하고 헤어지니 굳이 집에까지 가서 자고 올 필요가 없었다. 시골로 이사오고 나니 서울에 근거지가 없어졌다.  서울 오면  자고 가라는 곳은  여기 저기 많이 있다.
그래도 제일 만만한 딸네 집을 찾게 된다. 직장 나가는 딸에게 행여 부담이 되지 않을까 조심 스럽기는 하다. 나를 위해 끼니 걱정일랑 하지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약속이 많아  밖에서 식사 하느라  집에서 저녁 한끼 함께 할 시간도 없기는 했다. 오랜만에 본 외손녀도 이제 숙녀티가 난다. 수능이 끝나고 벌써 가까운 커피 전문점에 알바이트를 다니고 있었다.  딸이 퇴근 후 사위와 함께 외손녀가 일하는  커피점에 들려보기로했다. 집에서는 마냥 어리광 부리며 언제 철이 날까 싶었는데 제복을 입고 직접 커피를 내리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오너가 함께 일을 하는 작은  커피점 이었다. 외손녀가 일을 잘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동안 가졌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닫는다.
수십 가지  음료 레시피를 하나하나  꼼꼼히  외워서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전문가처럼 맛을 제대로 내는 바리스타가 되어있었다. 의젓한 외손녀를 보며  어디서나 제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리란 믿음이 생긴다.

  중학교 졸업할 때 수석으로 졸업해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던 총명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를 않아 딸이 마음 고생을 많이 했다. 자연 두 모녀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누구라서 자식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던가?  지금 현재 보이는 모습으로  자녀를 재단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학교 성적이 그 아이의 전부를 나타내지 않는다. 나타나지 않은 잠재적인 가능성을  바라보고 기다려줄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공부는 언제고 필요한 순간에 해야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던 딸이 대학 때 영국으로 어학 연수 1년 다녀온 뒤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변화된 모습으로 돌아와 우리를 놀라게 했었다.  피나게 노력한 결과였다. 다소 기대에 못미치는 외손녀의  현재 모습이  미래의 모습은 아니다.  얼마든지 큰 숲으로 자랄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될것으로 믿는다. 아직 그에게서 피어나지 않은 꽃눈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확인하며  외손녀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넌 틀림없이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꿈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달려보자. 우리의 보물 수빈아. 너를 사랑하고 기대하며 너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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