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작시

아버지의 발

조은미시인 2019. 7. 15. 00:32

 

아버지의 발

조 은 미

 

아버지

당신의 입술은 제 발입니다

 

발이 삶을 포기하던 날

아버지는 화장실 앞에서 주저앉으셨습니다

 

묵묵히 받쳐주던 그 무심함 언저리

당연 했던 일상이 하니씩 발끝에서

빠져나와 늪을 건넙니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탱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한 평 침대에 누워

억지 호강을 누리면서

머리가 된 발은 제 있던 자리를 묵묵히 내려다 봅니다

 

육군 소위로 6·25 전쟁터를 누비던 발

포철 산업 역군으로 초석을 다지던 발

외동딸 목마 태우고 동네 한 바퀴 돌던 발

 

하모니카 운율 타고

시공을 넘어서

아버지의 발이 춤을 춥니다

환하게 웃고 계시는 엄마도 만나고

수고했다 손 잡아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나고

 

까칠해져 가죽만 만져지는

아버지의 발

잠이 드신 입술 위에 가지런히 포개 놓습니다

'영상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  (0) 2019.10.12
닫힌 문  (0) 2019.09.26
썬글래스 사랑  (0) 2019.06.04
아버지  (0) 2019.04.07
봄,그 첫사랑  (0) 2019.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