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위에서
조 은 미
3일전 뵈었는데
그리 긴 시간이 아니건만 아버진 그새 먼 시간 여행을 하셨는지 초점없는 눈에 병실을 들어서는 날보고 '누나' 하고 힘없이 미소를 지으신다.
순간 철렁하는 가슴
아버지 내가 누구야?
누구는 딸이지.
순간 정신이 돌아 오시나 보다.
그새 볼도 홀쭉해지시고 수염도 덥수룩히 자랐다.
하루하루 강 저쪽 끝을 향해 달려가시는 아버지 !
혼자 뜻도 모를 말씀을 중얼거리시더니 이내 곤하게 잠이 드신다.
수염 을 깎이드리고 가만히 손등을 쓸어본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이 조수처럼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진다.
불과 두어달 전에도 문우 선배가 부탁한 시를 일어로 번역해주시던 총기가 어느새 옛말이 되었단 말인지!
혼자서는 돌아눕지도 못 하시며 죽음을 정면으로 대면하며 묵묵히 견뎌내시는 안타까운 모습을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무력함이 곤혹스럽다.
"내가 빨리 가야할텐데"
"너무 오래 살았어"
"이제 고만 가고싶다"
혼잣말을 노래처럼 달고 사신다.
전화도 받으실 힘이 없어 무용지물이되었다.
아무 것도 필요없는 때가 이리 속히 오는데
무엇을 위해 동동거리며 그리 분주하게 살아야 되는지!
삶의 우선 순위를 다시 짚어가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어둑해지는 거리 찬바람이 스치는 기차역에 덩그만히 홀로 앉아 기차를 기다린다.
너나 할 것 없이 가야 하는 그 길
이 세상에서 내 여행길도 멀지 않을텐데....
오늘은 눈이 유난히 더 침침하고 갑갑스럽다.
마지막 까지 함께 동행하시며 지켜주실 그 분을 의지하며 그나마 통증이 없으심을 감사한다.
비어오는 가슴을 떨어내며 아버지의 나머지 날들이 평강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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