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꽃물 들이기
조 은 미
한여름 내내 울타리 지키며 붉은 꽃잎 달고 있는 봉숭아를 보면 까닭없이 애잔해진다.
수줍게 웃을 듯 말 듯 고개를 떨어뜨린 모습하며 난하지 않은 그 붉은 빛이 가슴을 파고들면 잊고 있던 젊은 날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몽글 몽글 운무처럼 피어올라 그리움의 샘물이 솟는다.
올해는 꽃이 지기 전 꼭 봉숭아 꽃물을 들여야지 별렀는데 마침 반갑게 번팅으로 찾아온 벗이 있어 서들러 한 웅큼 봉숭아 꽃과 잎을 따 급한대로 소금을 넣고 도마에 콩콩 찌어 잎으로 싸맨 후 비닐로 한겹 더 싸 실로 챙챙 감아준다. 옛날 엄마가 손가락을 싸매주시던 그 때를 떠올리며 아릿한 추억에 젖는다.
손톱에서 꽃잠을 재우며 행여 밤새 빠져나갈까 비닐 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꽃꿈을 꾼다.
설레임으로 꽃집을 벗겨내는 순간
밤새 손톱과 나눈 사랑의 흔적!
아침 해살에 손가락을 펼쳐보며
따사로운 미소를 짓는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꽃물이 남아 있으려나?
생은 손가락 처럼 가슴에 남아 있는 첫사랑!
행여 한 번쯤 다시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