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묵은지의 변신

조은미시인 2021. 8. 30. 23:49


묵은지의 변신
조 은 미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매일 뭐가 그리 바쁜지 살림에 손이 안가 늘 냉장고를 정리해야지 벼르다가 오늘 모처럼 손이 노는 날이라 팔 걷어 부치고 냉장고 청소에  나선다.
먹다 놓쳐 시다못해 군내 나는 묵은지가  여기저기 뒹군다.
어제 친구네서 먹어본 묵은지 조림이 얼마나 맛나던지  나도 따라해 볼 요량으로 굴러다니는 묵은지를 한데 모아 양념을 빨아내고 한참을 울궈낸다. 
우선 멸치, 다시마 육수 내 놓고  적당한 크기로  썰어 놓은 김치에  매실 액기스 서너 수저 넉넉히 설탕도 한 수저 적당히  가미하여 넣어 준다.
된장도 한 수저   다진 마늘과 쫑쫑 썬 파도 함께 투하하여 조물조물 무친 후 매콤한 청양고추와 홍고추 두어 개 어슷어슷 썰어 넣고 육수 넉넉히 부은 후 액젓으로 간을 맞추고  중간 불에 은근히 푹  무르도록 조려준다. 거의 국물이 졸아들 즈음 들깨 가루 넉넉히 넣고 통깨 훌훌 뿌려 들기름 살짝 두르니 묵은지의  깊은 맛과 구수한 된장 맛이 청양고추의  칼칼한 맛과 어우러져 그 중독성 있는 환상적인 맛 이라니!
혼자 먹는 밥상 이지만 밥도둑이 따로 없다.
절로 젓가락이  쉴새 없이 움직인다.

애정을 가지고 도닥거리니 못 먹을것 같던 묵은지도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묵은지 조림처럼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면  엇가던  사람도 돌아 서는 기적을 주변에서 많이 경험한다.
사물이나 사람이나  사랑만큼  본성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묘약은 없는 것 같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맘껏 사랑하며 살자. 사랑은 표현 하는것 만큼이 사랑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마음으로 아무리 사랑 한다한들 가슴에 넣고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랴. 사랑 표현에 인색하지 말고 가슴의 크기 만큼 입도 열고 손도 발도 따라 움직이면 세상은 훨씬 따뜻하고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내 게으름으로 맛나게 변화할 수 있는 김치를 묵은지로 팽개쳐 두고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돌아볼 일이다. 이 참에 내 마음의 묵은지도 있는지 꺼내봐야겠다. 뭐든 때가 있다.김치도 맛날 때 부지런히 챙겨 먹는 게 좋다.
때를 놓치면 되돌리는 데 몇 갑절의 수고로움이 있어야한다. 지금 내가 있는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옆에 있을 때 잘 챙기고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자.
묵은지 조림 한 수저에 사랑이 날개를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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