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큰 그릇을 준비하며 살자

조은미시인 2021. 9. 10. 07:42


큰 그릇을 준비하며 살자
조 은 미

일주일 만에 서울 집에 돌아온다.
빈 집 지키고 있던 다육이들이 제일 먼저 반긴다.
가시 세우고 늘 경계 태세로 무장하고 며칠 버려두어도 끄떡 없을 만큼  스스로 강인함의 내공으로 견디는 녀석들을 보면 대견하다.
몇 년째 작은 화분 그대로 옮겨 주지도 않고 키우니 그릇에 맞춰  스스로 성장을 절제하는 녀석들!
다 이름도 있으련만 이름을 아는 정도의 관심도 없어 다육이로 통칭하는 푸대접에도 근 6년 넘게 악착 같이 좁은 집에서 제 나름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녀석들이 좀은 안스럽기도 하다.

몇 달 전 큰 맘 먹고 빈 화분 하나 있길래 식구들이 늘어나 더 이상은 도저히 안될 것 같은 녀석 하나 큰 집으로 옮겨주니 어느새 화분을 그득 채우고 다른 녀석들의 부러움을 독차지 하며 맏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얼마든지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을 내 잣대로 묶어 더 이상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던 게으름과 갑질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 자식에게 나는  어떤 부모일까?
아이들 성장을 방해하는 부모는 아닌지 부모된 사람들은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부모가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아도 다 제 나름 자기 앞가림을 하며 세상을 헤쳐갈 능력이 있는 아이들인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욕심의 잣대로 아이들을 재단하며 그 기준에 못미치면 닥달하고 서로 증오를 키워가며 힘들어하는 관계를 주변에서 보게 되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자녀에게 알맞는 그릇을 준비해 주고 맘껏 자랄 수 있도록 힘 닿는 만큼 뒷받침하고 응원해주는 게 부모의 역활이리라.

사람의 신체 중에 제일 큰 것이 무엇일까?
눈일까?
눈은 작지만 주변에 보이는 범위만큼은 다 담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아주 작은 것도 아주 큰 것도 보지 못 한다,
그러고 보면 마음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주를 품을 만큼 제일 큰 것 같다.
내 마음의 그릇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그릇의 크기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무엇이나 채을 수 있는  큰 그릇으로 비워 놓는다면 훨씬 내 속에서  여유있게 모든 것이 가지를 뻗고 자라리라.
  때로 밴뎅이 속알딱지 만큼 작아져 온갖 쓸데 없는 것이 다 가시가 되어 찌르는 불행한 삶을 자초하고 싶지 않다면 늘 마음의 그릇을 크게 준비하고 비우고 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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