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우선 순위의 지혜

조은미시인 2021. 10. 21. 08:32


우선 순위의 지혜
조 은 미

날씨가 바짝 추워지니 배추 앞에 선 마음이 복잡해진다.
배추 피해가 생각보다 심각 한 것 같다.
올해 배춧값이 얼마나 금값일지 걱정 된다. 이웃들도 무름병에 배추가 주저앉거나 다 자란 배추가 첫 추위에 얼어서 걱정들인데 떡잎 히나 안 지고 파릇하게 자란 배추가 신기하고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한 보름 정도 더 자라면 속이 꽉 차겠건만 11월 한 달간 제주살이 다녀오면 추위에 견뎌줄까 싶어 아깝지만 뽑아서 김치라도 담가 냉장고에 보관하고 한시름 잊기로 작정한다.
무도 달랑무 김치 담글 만큼은 자라 함께 뽑아 절이니 제법 두어 통 들어갈 만큼 양이 된다.
얼결에 김장김치 담는 판이 벌어져 큰 그릇이란 그릇은 다 나오고 김장하는 품이 얼추 들어 하루 종일 종종거린다.
뒷설겆이까지 마치니 저녁 9시가 겨웠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엉치가 무너나는 것 같고 다리까지 땡긴다.

젊어서는 몇십 포기 김장을 일도 아니게 버쩍버쩍 했는데 이제는 요만 일도 벅차고 힘이 든다.
김치 5 kg만 사면 혼자 입에 넉넉하고도 남을텐데 이게 무슨 미련 곰같은 짓 인가? 요즘은 사는 김치도 전문화 되어 먹을만 해서 집에서 담는 김치만 고집할 일도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꼽장 치곤 욕심이 과했다 싶어 후회가 막급이다.
나이 들수록 제일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 건강이다. 건강 잃으면 만사가 다 허사이다. 우선 순위를 지키며 절대 만용을 부릴 일이 아니다.
내년 부터는 땅을 놀릴 망정 배추의 배자도 돌아보지 말자 다짐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고 꿈적 거리지 않으면 입에 들어갈 까닭이 없으니 벌려놓은 일이라 맛있게 담아보려 유투브를 숙독하고 갖은 정성을 다한다.

통북어에 각종 야채 넣고 푹 고아 육수를 만든 후 사과, 배, 마늘, 생강, 양파, 무 믹서에 넣고 육수를 부어 갈고 대파, 갓, 쪽파 썰어 넣고 고춧가루 넉넉히 넣어 버무린 후 새우젓, 까나리 액젓으로 간 맞추고 매실 액기스, 앙파 액기스 조금 가미한다.
찹살풀은 김치가 일찍 시어질까 싶어 넣지 앓고 그대신 소주를 조금 부어본다.
조금 늦게 시려나 싶어서.
전혀 검증된 건 아니지만 시험 삼아 한 번 시도해 본다.
양념이 어우러진 맛이 입에 착착 붙는 게 맛나기는 하다.
잘 버무려 배추와 달랑무를 번갈아 켜켜이 한통에 차곡차곡 담는다. 무가 우러나와 더 시원하고 맛있지 않을까?

힘은 들었지만 두 통 그득히 냉장고에 들어 앉은 김치통을 보니 부자가 된 듯 마응이 넉넉해진다.
온 종일 수고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뭔가 해낸 것 같은 성취감과 기쁨이 몽글몽글 솟는다.
애쓴 만큼 맛있게 잘 익기를 기도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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