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아버지께서 워낙 욕심 없이 사셨던 분이고
사망 신고 한 장으로 이 땅에 오셨던 한 생이 깨끗이 정리된 터라 뭔가 따로 상속 받을 유산을 기대할 것도 없었지만 이말무지로 금융 조회를 신청해 놓았더니 딱 한 군데 미래에셋 증권에서 잔고가 있는 구좌가 있다는 회신 문자를 받았다. 아버지 일상 생활 은행 관계는 입원하신 후로 내가 관리해오던 터라 나도 모르는 통장이 있었다니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가족 관계 증명서를 발급 받아 방문해서 알아보니 200원의 잔고가 있단다. 혹시나 했던 기대에 실소를 금치 못하며 잔액을 찾겠느냐는 직원의 물음에 됐다고 돌아서는 스스로의 모습이 얼마나 열적은지 아버지의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을 떠올리며 한바탕 혼자 큰 소리로 웃어본다.
그리고 십수 년 전 평창군 봉평면 어딘지 한창 평창 올림픽 붐을 타고 기획 부동산이 기승을 부리던 때 그럴듯한 감언이설에 속아 구분 등기도 할 수 없는 1만 여평의 산에 수십 명이 연명으로 등기 되어 있는 땅 중 200 여펑의 지분 한 필지가 유일한 아버지 소유의 유산으로 남겨졌다.
나한테 언젠가 얼핏 그 땅 이야기를 비치시기는 하셨던 것 같다.
절대 그런 상술에 넘어가지 마시라 신신당부 드렸는데도 순진하신 양반이 뭐에 속아넘어가셨는지 지금도 공시 지가가 50 여만원 남짓한 땅을 당시 시가 1500 여만원이나 주고 매입하신 후 평창 올림픽 특수를 꿈꾸며 큰 재산이나 일구신 듯 대견해 하시고 행복해하셨던 기억이 난다.
기대했던 평창 올림픽은 그 땅과 상관도 없이 지나가고 땅을 팔았던 기획 부동산 사장도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후로 그 땅에 대해서 아버지도 거의 포기하시고 말씀이 없으셔서 잊고 있었는데 조회 중 튀어 나와 이번에 여러가지 복잡한 행정 처리를 하며 아버지를 다시 추억하게 된다.
비록 사기는 당했을망정 한 동안 그 땅으로 인해 희망의 꿈을 꾸며 행복해 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름 그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찌보면 어리숙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생전 남을 의심할 줄 모르시고 남의 말을 액면 그대로 순수하게 믿고 사셨던 아버지의 그 천진스러움은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가시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실패에 연연해 좌절하지 않고 툴툴 털어버리고 내 믿음의 눈 높이로 넉넉히 품고 자족하며 없는 것 보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사셨던 긍정의 힘이 내게 무엇보다 소중하게 남겨진 유산임을 감사한다.
직접 대세 상속이 어려워 내 이름으로 상속 등기했다 다시 딸에게 증여하는 복잡한 이중의 등기 절차로 땅 값 보다 더 비싼 수수료에 법무사가 오히려 난감해 한다. 계산상으로 따지면 상속 자체가 무미한 뺄셈의 현실적 셈법에 하도 잣달아 재산세도 안나오는 쓸모 없는 땅이지만 딸 이름으로 증여 등기를 해주며 아버지께서 가지셨던 그 긍정의 힘과 늘 꿈꾸셨던 활기찬 희망의 기운이 대를 넘어 딸에게 상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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