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추억의 언저리를 서성이며

조은미시인 2022. 2. 22. 23:53





추억의 언저리를 서성이며
조 은 미

우수가 지나고 며칠 따뜻해 봄이 왔는가 했더니 여전히 동장군의 위세는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아무래도 그냥 떠나기는 억울한지 마지막 심술을 부린다.
매월 넷째 주 화요일에 만난다 해서 화사회라 이름 붙여진 대학 동기들 모임을 이번 달엔 집 근처 아차산에서 만난다하니 반가운 마음에 함께 하고픈 욕심은 굴뚝 같지만 무릎을 생각하며 언감 생심 등산은 가당찮은 욕심이라 마음을 접는다. 아쉬운 대로 점심 먹는 식당에서 만나 얼굴이나 봐야겠다 서운한 마음을 달랜다.
학창 시절 딱히 친했던 친구들도 아니고 졸업 후 몇십 년 만에 만나 근래 얼굴을 트고 지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지만 동기라는 한 가지 인연으로 몇십 년 세월의 갭을 뛰어넘어 그저 만나면 반갑고 몇 마디 나누는 말 속에서도 정이 느껴지고 신뢰의 끈이 서로를 가깝게 한다.
뭐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마침 엊그제 주문해서 뜯지도 않은 치약 꾸러미를 선물 삼아 들고 나간다.
약속 시간 보다 1시간여 늦어서야 반가운 얼굴들이 식당으로 들어선다. 모두 건강한 모습들이다. 그래도 등산을 할 수 있는 체력이 되고 아직 이리 내 다리로 걸어 친구들을 만 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어느 친구라고 반갑지 않을까마는 이 모임에서 처음 만나는 친구인데 영자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끊겼던 추억 속의 회로가 연결되며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45~6년 전의 그녀의 얼굴이 어렴풋이 오버랩 되며 반가움이 솟는다.
전혀 기억 속에서 나를 떠올리지 못하던 그녀도 근무했던 학교를 되짚어 가며 드디어 같이 근무했던 학교 이름을 되뇌어보고서야 기억을 소환하며 뛸 듯이 반가워 한다.
서로 집을 오갈만큼 친했었는데도 오래 잊고 살다 보니 희미한 추억 속에 서로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가 참 나이가 많이들었음을 실감한다.
사람이 그립고 따뜻하면서도 제일 두렵고 무서운 것도 사람이다.
낯선이들의 지나친 친절도 겁이 나고 안심이 안되는 세상에 아무 때 만나도 무장해제 되어 친근히 만 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건 얼마나 살 맛 나고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지!
그래서 묵은 인연이 더 소중하고 애틋하게 여겨진다.
추억의 언저리를 서성이며 가슴의 온도가 따뜻하게 오른다.
오랜만에 회포를 풀며 나이를 반납하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
변변치 않은 선물에도 모두 고마워하고 즐거워한다.
작은 것이지만 마음을 나누는 건 서로를 따사롭고 행복하게 한다.
오늘도 감사가 넘치는 날이다.
동기들 모두 반가웠어. 건강 허락할 때 자주 만나고
오래 동행하며 서로의 기쁨이 되어 살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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