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비내섬의 겨울 속에서

조은미시인 2022. 2. 18. 09:04



















비내섬의 겨울 속에서
조 은 미

충주 캔싱턴 리조트에서 1박 후 그냥 오기 섭섭하여 주변 볼거리를  검색해 보니 가장 근접한 거리의  비내섬이 안테나에  걸린다.

비내섬은 남한강을 따라 퇴적된 강모래, 자갈이 쌓이면서 생긴 육지섬으로 30만 평에 이르는 자연 습지이다.
쑥, 좀보리사초, 달뿌리풀, 물억새, 왕버드나무, 산버드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요즘은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달을  비롯한 삵, 단양쑥부쟁이, 큰고니, 호사비오리, 묵납자루, 꾸구리, 돌상어, 표범장지뱀등 이름도 생소한 10여종의 멸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자연의 보고이다.  또한 한강의 숨은 비경으로 일곱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주차장에 내리니 소리의 섬 비내섬이란 팻말이 우뚝 서 반긴다.
비내섬은 무성하게 자란 억새풀을 비어내는(베어내는) 곳이란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아무도  없다.  오롯이  우리 셋만 지구상에 남은 듯 고요하다. 다리를 건너 천을 끼고 왼쪽으로  접어드니 마른 억새 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잊는다.

사람 키 만큼이나 키가 큰 억새 속에  발에 밟혀 오롯이 맨살이 드러난 오솔길을 따라 소리를 모으며 걷는다. 
억새에  스치는 바람 소리와 고요를 가르며  마른 풀을 밟는 우리의  발 소리만 사각거린다.
아니  가만히  들어보니  돌돌 거리는  물소리와 버드나무  마른 가지에 곧 터져나올 듯 초록 봄이 숨 쉬는 소리도 들린다.
누가 겨울을 쓸쓸하고 황량하다고 했는가?
벌거벗은 앙상한 가지에서 진솔한 나무의  모습이  보이고  잎이  파릇한 봄의 희망과  무성한 여름의 성숙이 그려진다.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된 잠재적 생명의 기운이 온 공간을 휩싸며 활기가 느껴진다.

누렇게 마른 억새가 바람에 공감하며 내는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와 바람에 유연하게 몸을 휘며 스스로를 지켜가는 지혜와 순리를 따르는 여유로움에 가슴이 열리는 힐링을 느낀다.
숨이 멎을 듯 깊이 있게 흔들리는 빛 바랜 겨울 색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꽃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빈 공허 속에  채움을 경험하는 것이 겨울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나를 비우며 겨울의 소리로 채워본다.  봄을 향한 희망으로 마른 가슴에 촉촉하게 물기가 차오른다.
누런 억새  숲에서  우리의  모습을  본다. 묘하게  닮았다.  우리도  푸름은 갔지만 바람에  맞서 더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살아가자  다짐해보며  카메라 앵글에 억새가 되어 선다.
까르륵  거리는 웃음 소리가  하늘을  난다.
어쩌면  그리  하늘 빛이 곱고 맑은지!

햇살이  따사롭다.
겨울  속에  서서 친구와 마주 잡은 손길을 따라 어느새 우리들 마음에도 봄이 성큼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