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보내며
조 은 미
지난 5일 어버이날 치례로 막히는 교통 체증을 뚫고 아이들이 미리 와서 푸짐하게 용돈도 챙겨주고 오랫만에 식구들이 모여 집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다녀간 끝이라 기다릴 사람도 없는데 왠지 하루 종일 허전함과 까닭 없이 가슴 한 쪽이 비어오는 아릿함으로 서성댄다.
어버이 날이 다가오니 두 분의 부재가 주는 빈자리가 왜 이리 큰지!
가슴이 텅 비어오고 갑자기 몰려오는 외로움으로 혼자 지키는 집이 적막하기까지 하다.
저녁답이 겹도록 얼씬 거리는 사람 하나 없어 동네 개마저도 짖지 않으니 온 세상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집에 시계가 없어 나 낳은 시도 정확히 모르지만
추운 겨울 밤 외할아버지 말 갔다 오실 때
태어났다니 오후 9시경은 되지 않았을까?
6.25 전쟁 중이라 미역 한 오가리 못구하고 어찌 어찌 동네 사람이 먹다 남은 미역 한 오가리 준 것을 외증조 할머니께서 맛나게 끓여준다고 참기름에 달달 볶는다는 게 어둔데서 석유를 참기름인 줄 알고 부어 석유 부었던 미역을 열두 번도 더 씻어 해산 미역국으로 드셨다는 우리 엄마! 결혼을 일찍해 육군 소위 아버지를 따라 전방에서 박봉에 어렵게 신혼 살림을 꾸리며 사셨다.
그간 진급을 하시며 형편이 조금씩 피긴 했겠지만 여전히 단칸 셋방에서 참 알뜰하게 사셨다. 어려서 마이가리란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익숙하게 듣고 자랐는데 군인 월급 가지고 채 한달 살아내기가 빠듯해서 지금 말로 하면 가불같은 걸 해서 미리 당겨 쓰셨는지
그리 어려운 살림을 살았는데도 무남독녀 외딸로 두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인지 난 한 번도 우리가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던 기억이 없다.
늘 건빵을 나눠주는 나를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친구들 치마 저고리 입을 때 난 나일론 원피스 입고 검정 고무신 신고 다닐 때 흰 구두 신고 책보 허리에 묶고 다닐때 란도셀 가방을 메고 공주처럼 다녀 친구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없는 살림에 딸래미 하나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우셨던 부모님! 덕분에 자존감과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양쪽 부모님 모시며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돈 쓸데가 많아 무슨 이름 붙은 날은 용돈 챙겨드리려면 버겁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혼자 쓰느라 넉넉한데도 막상 용돈 챙겨드릴 부모님이 안계신다. 살아 생전 살갑게 따뜻이 보살펴드리지 못한 후회로 가슴이 메인다.
오늘 따라 절절이 그립고 뵙고 싶다.
그리운 이름을 가슴 속에 불러본다.
엄마, 아버지 천국에서 잘 계시지요?
이젠 두분이 만나셨으니 더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시고 계시겠네요.
사랑해요. 엄마,아버지!
부모님 찾아뵙고 식사도 하고 용돈도 드리고 하는 특별한 날에 갈 데가 없다는게 참 적적하고 두 분 생각에 그리움으로 가슴이 시려온다.
부모님 대신 이모님 두 분 , 외숙모님께 용돈을 챙겨 부쳐드리며 마음의 서운함을 달랜다.
늘 후회는 때 늦게 온다.
뜨락에 내려서 에미의 마음이 되어 내 새끼들을 돌아본다.
빨간 단풍나무 씨가 하나 떨어져 뾰족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엄마 나무 옆에 심어준다.
어미 수국 스러진 자리에 파릇 파릇 올라오는 애기 수국도 앙증맞다.
꽃잔디도 다 죽은줄 알았는데 연초록 새싹들이 모두 눈을 뜨고 활기차게 뒹굴고 있다.
작약도 목단도 새싹이 자라 곧 꽃이 필 것 같다
봉긋한 꽃망울이 사랑스럽다.
그래 너희들도 다 어미가 있음에 이 세상에 온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렴. 네 안에 사는 어미 모습을 닮아가려므나.
내일은 엄마가 좋아하시던 한련화를 사다 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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