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요 며칠 새 사랑에 빠져 공연히 싱숭생숭 마음이 설레이고 요녀석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웃음이 샘 솟는다.
뜨락에 지천으로 화사하게 피어있는 가지각색의 꽃들 중 거실 테이블에 올라앉은 녀석은 하나도 없었건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파낸다고 엊그제 친구가 가져다준 아프리칸 바이올렛 두 분이 떡하니 거실 테이블에 올라앉아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새 사랑이 무섭긴 하다.
어느새 뜨락의 조강지처 꽃들은 여벌이고 눈 앞에서 알랑거리는 시앗의 교태에 마주 눈웃음을 치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땅에 뿌리 박고 때로 몇 주일씩 집을 비우고 다녀도 쓰다 달다 말 한 마디 없이 뜨락을 지키며 때 되면 꽃 피워주고 묵묵히 제 소임을 다하는 조강지처의 소중함에 비길까마는 앙증맞게 흰꽃과 보라색 꽃을 달고 있는 사랑스런 요녀석들을 눈 앞에 두고 목석이 아니고서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조강지처가 마음에 없는 것도 아니고 가정의 평화를 깰만큼 몰두하는 것도 아니니 양심에 그리 꺼리낄 것은 없지 않을까? 자기 합리화의 덫을 쳐본다.
어디 사랑이 한가지 빛깔만 있을까?
흰색은 흰색이어서 좋고 보라색은 보라색이어서 좋은데 사랑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고 사랑이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인가? 이 사랑도 좋고 저 사랑도 좋으니 사랑 많음이 유죄로다.
그런데 요녀석들 사랑스러운 만큼 까다롭기도 해서 햋빛이 너무 강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응달도 안되고 햇빛이 직접 비치지 않는 양지 쪽 창가가 좋단다.
밖에 함부로 내돌려도 안되고 밤에 불을 켜 놔도 꽃이 피지 않고 물 줄때도 잎에 닿으면 안된다니 당분간 새 사랑 비위 맞추려면 시집살이 꾀나 하게 생겼다.
하기는 조강지처 놔두고 다른 사랑 하기가 어디 그리 만만한 일이던가?
외도도 삶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나 하지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세상 재미없는 신랑이 아무데나 가서 바지 안벗는 것 하나 마음에 들어 70 평생 살고 있다는 친구의 농담에 치마 두른 여자는 다 좋다고 나대는 화상보다야
백 번 재미없는 남편이 낫다고 깔깔 거리며 웃었던 적이 있다.
어느 집 가보면 아프리칸 바이올렛을 수십 개씩 잎꽂이 해서 새 화분 늘려가며 애첩같이 돌보는 사람도 많더만 늙으막 만난 사랑이니 내게서 그런 열정일랑 기대하지 말거라.
아무렴 네가 조강지처만 할까보냐.
그냥 살아 있음에 한 때 지나는 바람으로 너를 곁에 두고자 한다.
그래도 사랑을 쏟으니 오던 날 보다 몇 송이 꽃을 더 달고 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아직 꽃 피울 몽오리도 몽실몽실 달려있다.
이러다 망녕나 화분 몇 개씩 늘려가며 애첩 돌보는 일에 종사를 삼고 회춘이라도 하는것 아냐?
늙으막 사랑이 그 정도 되면 인생 대박일랑가?
불륜도 사랑이려니 누군가 사랑은 죄가 없다기도 하더라만 !
아서라 사랑이 아무리 좋기로 내 몸 귀찮으면 당키나 한 일인가?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망정 오늘은 사랑하므로 행복 하다.
유치환의 행복을 읊조려 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자작 수필,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로의 의미가 되어 사는 행복 (0) | 2022.05.09 |
---|---|
어버이날을 보내며 (0) | 2022.05.07 |
Double date (0) | 2022.05.03 |
사랑! 그 오묘함이여. (0) | 2022.05.01 |
무궁화 피는 꿈 (0) | 2022.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