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반납
조 은 미
새벽 바람에 오란다고 쫓아가는 열정이나 커피 향기 부드러운 카페에서 브런치 먹이고 점심까지 거하게 사주며 싫어말도록 이야기 보따리 풀어놓고 그래도 헤어지기 서운해 우리집 까지 따라오는 친구의 열정이나 누가 우릴 70대라 할까?
마당도 초록이니 자연스럽고 전원에 어울리는 여유가 있어 좋다고 허리 핑계 삼아 한껏 마음을 누그러 뜨리며 그대로 살자 버려두었더니 온통 제 세상 만난 민들레와 잡풀이 기가 살아도 너무 살아 무슨 폐가처럼 마당이 빤한 데가 없고 발 딛기도 걸리적 거린다. 지나다 누가 대문 안이라도 들여다 보면 게으른 흉이나 잡히지 않을까 남사스럽고 민망해 허리 단도리 하고 한 판 혼구멍을 내주리라 벼른다.
요녀석들 결국 너무 설치니 그냥 참아넘기기엔 임계점에 다달아 팔소매 걷어 붙이고 바짝 덤벼들었더니 대봉투로 두 보따리나 실히 되게 민들레를 뽑았다. 땀흘려 뽑은 민들레를 일 만들자니 한숨이 나오고 그냥 버리자니 아까웠다.
망설이다 맷방석에 펼쳐놓고 노느니 염불이라고 친구와 둘이 퍼질러 앉아 이야기 하며 지루한 줄 모르게 다듬고 나니 밤이 꾀 깊었다.
내친김에 아예 김치를 담아 버리자 싶어 소금을 세게 뿌려 한 30분 우르르 절인 후 숨이 죽은 민들레를 싹싹 비벼가며 덖어 쓴물을 빼주고 홍고추, 양파 , 사과 반개, 무 몇도막 믹서에 갈고 멸치, 표고버섯, 다시마 육수 낸 물에 고추가루 풀고 마늘 다진 것 , 갈아놓은 양념과 밀가루 풀을 섞은 다데기에 파 숭덩숭덩 썰어 넣고 멸치 액젓, 새우젓 간하여 매실청 좀 넣고 버무리니 말로만 듣던 민들레 김치 완성이다.
처음 해본 솜씨치곤 걸작이다.
한 줄기 맛보니 이건 완전 환상적인 맛이다.
고들삐 김치처럼 약간 쌉싸레 하면서 싱그러운 맛이 자꾸 침샘이 돈다. 친구도 인정히는 맛이니 분명 허풍은 아니다.
내 손 맛이 좋은건지 민들레 김치가 워낙 이리 염치없는 밥도둑인지 궁금하신 분은 한번 직접 담아보시기 권한다.
12시가 넘어서야 뒷설겆이를 끝내고 일기 몇자 끄적거리고나니 2시가 되어서야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니 6시다.
일찍 가야한다는 친구를 그냥 보내기 섭섭해 부리나케 밥을 안치고 아침을 준비한다.
생선 한 도막 굽고 민어 추어탕에 있는 반찬 몇 가지 꺼내고 엊저녁 담은 민들레 김치와 갓 따온 상추쌈을 늘어놓으니 걸판진 아침상이 차려진다.
새벽 같이 일어난 친구도 어느새 호미를 들고 화단을 다독거리고 있다.
소리쳐 아침 먹으라고 부른다.
도무지 둘 다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솟는지?
이 행복함과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서 오는 걸까?
넘치는 사랑이 아니면 가능한 일일까?
사랑은 우리 같이 한물 간 은발도 회춘하게 만든다.
혼자 먹다 둘이 먹는 아침은 꿀 맛이다.
친구도 얼마나 맛나게 먹는지!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더 달란다.
연신 맛나다 소리를 연발하며 달게 먹어주는 친구가 사랑스럽고 고맙다.
행복하니 얼굴도 화사해진다.
웃는 얼굴이 얼마나 매력있는지!
소녀 시절 그 풋풋하던 생기가 다시 살아나는 듯 하다.
마주 보고 까르륵 거린다.
서로 쳐다 보며 " 너 오늘 왜 그리 예쁘니? " 하고 동시에 찌찌뽕하며 웃는다. 마음 통하는 허물 없는 친구만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있을까?
사는 게 재미 없다고 인상 구기고 사시는 분들 사랑이 답인 걸 아시는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면 세상은 사랑할 것들로 넘쳐난다.
작은 풀 한 포기, 돌 하나, 꽃 한 송이, 바람, 상큼한 공기, 좋은 사람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 가장 사랑스럽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좋은 사람 옆에 있는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사는 것 만큼 가슴 뛰는 일 있을까?
나를 보는 사람마다 젊어지고 예뻐졌다고 한 마디씩 거든다.
그냥 해보는 생색 내기용 멘트는 아닌 것 같다.
거울을 봐도 확실히 피부도 탱글거리고 생기가 느껴진다.
내 안에 사랑이 넘치니 절로 엔돌핀이 솟고 손 맛도 나는가 보다.
내가 주물떡 거리고 해주는 음식을 다 맛나게 먹는 걸 보면 사랑이 묘약은 묘약인가 보다.
오늘 아침도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사랑의 화살을 쏜다.
심장에 명중해 행복하고 에너지 넘치는 싱그러운 날 되시길 빌어본다.
수식어처럼 따라 붙던 할매, 어르신같은 고물 딱지는 엿장수한테 갖다 주고 다시 리폼해서 스무살 그 시절로 돌아가 아예 아가씨로 살아볼까나?
멋진 사람과 데이트도 하면서 ㅎㅎㅎ
우리만큼 예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해.
깔깔거리는 두 할매의 웃음소리가 장미 꽃 마냥 싱그럽게 울타리를 넘는다.
사랑해 친구야. 모쪼록 건강하게 서로 오래 함께 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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