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어들의 합창
조 은 미
5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는지 삶의 족적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이리라.
얼굴에 책임을 지기도 한참을 지난 70대 초반을 넘긴 나이에 서울교대 8회 총 동기 동창 50주년 졸업 기념 행사 모임을 그간 코로나에 묶여 미루고 못 모이다가 오늘서야 드디어 선릉역 상젤리제 웨딩 피에스타 홀에서 가졌다. 시간이 되자 훤하고 밝은 모습으로 함박 웃음을 띈 멋진 노신사 숙녀들이 들어서며 서로 얼싸안고 반긴다.
560 명 졸업생 중 140 명이 넘는 동기들이 모여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모임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입학할 때만 해도 선생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부정적인 직업 의식의 측면도 많이 작용을 했겠지만 초등학교 교사라는 지위가 사회적으로 그리 비젼이 있고 대접 받는 직종이 아니어서 나름 수재 소리를 듣는 학생들 가운데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못해 등록금이 비싼 일반 대학 진학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 타협의 궁여지책으로 교대를 지원해서 오는 가난한 학생들이 많던 시절이라 유난히 행색이 추레하고 꼬질 꼬질한 학생들이 많았다. 여학생들도 그랬지만 남학생들은 특히 더 심해서 그야말로 아예 그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말자 마음을 다지며 학창 시절 남학생들 보기를 돌같이 하면서 연애 상대로는 아예 선을 긋고 외면하고 다녔던 터라 특별히 눈여겨 본 남학생도 없고 남녀 공학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날 정도로 덤덤하고 건조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참 그 시절 모두가 똑 같은 교복을 입고 다녔던 것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나마 교복 덕분에 옷 입는 신경 안쓰고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몰 개성의 극치라 터부시 되었겠지만 그 추억이 우리를 하나로 묶는 매개체가 되어 지금은 그 교복 입던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구를 보아도 일류 멋쟁이가 되어 신수가 훤해져서 들어 오는 동기들을 보니 그간 참 잘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역력하고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이리 만나니 그저 대견하고 고맙고 반갑기 그지없다.
이리들 멋질 줄 알았으면 진작 그 때 미리 찜할 걸 그랬다고 짐짓 농으로 눙치며 너스레를 떨어본다.
모두 화기애애한 웃음으로 화답하며 깔깔 거린다. 동기라도 과가 달라 모이면 그야말로 직업도, 살아온 모습도 천태만상이라 이질감이 느껴지는 여느 대학 동창회와는 달리 평생을 같은 직업을 가지고 비슷한 수준으로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온 교대 동기들은 아무리 처음 보는 얼굴이라도 동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금방 가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끈끈한 유대감이 느껴져서 편안해진다. 몇 분만 마주 앉아 이야기를 트면 금새 10년 지기라도 된양 스스럼이 없어지고 친밀감이 든다. 이런 지성적인 균일 집단의 만남이 또 있을까 싶을만큼 만나면 자부심이 느껴지고 행복해진다.
이 땅의 초등 교육이 우리의 손에서 커온 걸 생각하면 나름 보람도 있고 깊은 책임감도 느낀다.
몇십 년만에 반 대표들이 은사님들을 찾아 뵌 동영상을 시청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이젠 완전히 고령이 되셔서 알아뵐 수도 없을 만큼 변하신 모습을 마주하며 곧 닥칠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연민으로 속이 아려온다.
젊은 시절 박봉에 아이들 키우느라 콩 튀듯 팥 튀듯 내 삶이란 것이 없을 만큼 바쁘게 고생하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연금 생활자로 주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편안하고 당당한 노후를 살아가고 있으니 그나마 그 간의 노고를 보상 받고 젊은 시절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상쇄되는 위로를 받는다.
나고음 시인의 축시와 다채로운 식전 행사가 이어지며 동기 회장으로부터 그간 행사 진행 상황 보고를 받고 맛난 뷔페로 오찬을 함께 하며 그간의 회포를 푼다. 백 살까지 두 다리로 산에 오르자라는 화사회 동창 회장의 '백두산''이라는 멋진 건배사에 다 함께 우렁차게 화답하며 응어리진 그리움의 실타래를 풀어놓는다. 화기애애하하게 까르륵 거리는 웃음 소리가 식탁마다 구른다.
서로를 향한 우정과 신뢰로 따뜻해진 가슴이 촉촉이 젖어온다.
식사 후에는 반 별로 장기 자랑 순서가 이어졌다. 모두 한가락들 하던 소시적 실력이라 별다른 준비가 없는 즉석 공연이지만 전문가 못지않은 수준의 실력들을 뽐낸다. 우리 반도 대표가 파티복까지 주밀하게 준비하여 이은상 시, 박태준 곡의 '사우' 를 멋지게 불렀다.
그 열정을 누가 말리랴!
이런 우수한 할배, 할매들 집단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할만큼 순발력과 숨은 재치들로 참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 모두 성공한 삶을 살고 있음에 눈물나게 고맙고 개도 부러워할 만큼 팔지 좋은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든든하게 연금으로 보장해주는 참 좋은 나라에 살고 있음에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허리띠 졸라매고 젊은 시절 박봉에 허덕이면서도 남보다 많은 기여금을 저축한 결과의 열매를 이제 누리며 산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던가?
사회를 보았던 당당하고 전문 MC 못지 않은 멘트와 메너로 좌중을 압도하던 멋진 모습의 노신사에게서 학창 시절 유난히 눈썹 선이 굵고 새까매 인상적이던 남학생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여전히 미모를 자랑하며 이 나이에 풀룻까지 불던 아직도 사랑스런 또 다른 여 동기 MC 에게도 부러움과 고마움을 전한다.
어느 모임이건 보이지 않는 헌신의 손길과 수고가 없으면 이런 모임이 가능하겠는가?
큰 모임을 주최하느라 애써주신 회장님 이하 임원진께도 깊은 감사와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
손에 손잡고 연인을 합창하며 100주년에도 함께 건강하게 다시 모이자는 덕담을 주고 받으면서 마지막 아쉬운 행사의 휘날레를 장식한다. 어느새 아름다운 코러스로 멋진 화음을 이루는 은어들의 합창이 홀 안에 울려 퍼진다.
서로 있음에 감사하고 더불어 행복했던 날!
머리는 은발이어도 우리의 가슴은 여전히 분홍빛이다.
벗들이여 틈나는 대로 자주 얼굴 보여주며 삽시다.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모두 평안하고 건강들 하시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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