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행복 낚시

조은미시인 2023. 1. 1. 05:16

행복 낚시
조 은 미

임인년 마지막 날이다. 매일이 같은 날이지만 끝날과 시작이라는 의미가  특별하게 와닿는다.  끝점과 시작은 하나인데도 12월 31일과 1월 1일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임인년이  몇 시간 뒤면 꼬리를 감춘다.계묘년이 임무교대  대기 중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보다 무탈하게  지난 1년이  그저 감사하다.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에게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 거의 매일이다 싶이 기록한 일상들을 들춰본다. 서리서리 똬리 뜬 추억들을 풀어본다. 언잖았던 일들도 즐거웠던 일들도 딸려 올라온다.  갈무리 되어 있는 추억들은 어느새  모두  연분홍빛으로 변해 있다. 즐거운  기억만 남아있다. 그새 그리움이 들어 찬다. 늘 밝은 크레파스로 칠하려  노력했던 날들. 따스함이 묻어난다.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 즐거웠던  웃음이 그대로 박제되어 있다. 서로의  기쁨이 되었던 인연들에 감사한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다 할수 있을까?  
  뭘 이루어야 하는 부담과 책임감이  없었기에 여유있고 편안했다. 그저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누리고 살기만 하면 되었다. 나이든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젊음이 부럽지 않은 인생의 절정기를 살고 있는 만족감이 있다. 더 이상 바람이 죄가 될 만큼 오늘에 족하다. 늘 자족하고  평안 안에 거할수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 새로 오는 해도 올해 같기만 바란다. 이만한 건강으로 이만한 기쁨으로 좋은 인연들과 함께 하기를 기원해 본다

  어제는 평소  존경하는 분의  특별한 점심 초대를 받았다.  12월 한 달을 한 해 동안 감사했던 분들의  목록을 만들어 한 분씩  모시고 식사를 대접 했단다.  내가 올해의 마지막 초대 손님이란다. 그분의 리스트에  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고마웠다. 푸근하고 여유로운 노년을 즐기시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도 닮아가고 싶다.

  송구 영신 예배가 토요일 9시 30 분에 있다. 아침부터 서둘러 나선다. 12층에 멈춘 승강기 문이 열린다. 본당에 불빛 하나 없는 고요가 휩쓴다.  무슨 일인가?  갑자기 멍해진다. 다시 광고를 확인해 보았다.  오전 11시 30 분과 오후 9시 30 분  2번의 예배가 있다고 씌여있다. 왜 오후를 오전으로 착각했을까? 황당했다. 그런 일이 어쩌면 앞으로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새해는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라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인다. 빈 예배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일어서 나온다.

  남는 시간을  보낼 궁리를 해본다.  늘 고마웠던  대학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항상 가까이 있어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변변히 표시하지도 못하고 지냈다.  어제 배운대로 바로 행동에 착수하기로 한다.  내친김에 점심 한 끼  대접해야겠다.  오늘같이 바쁜날  약속도 없이  갑작스런  초대에 응해줄 친구가 있을까?  반신반의 하며 단톡방에  행복의 미끼를 던져본다.  점심 한턱 내겠음. 시간되는 사람 번팅 초대에 찜하길  바란다는 메세지를 날린다.  행복의 낚시터에  찌를 드리우고   누근든 물어주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찌가 흔들린다.  짜릿한 촉감. 그래도 세명이나  낚였다. 강남의 이태리안 레스토랑에  모여  맛난 피자와 파스타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소중한 친구들. 늘 가까이 있어 고맙다는 말하기도 쑥스러워 무심히 지났던 미안함을 이제서야 털어놓는다.  그 시절 종로 갈릴리 다방의 추억을 그리워 하며  묵은 수다가 늘어진다.  9 명이 처음 만난 그 날처럼  같은 마음으로  50년이상을 지내 오고 있다,   세월의 연륜이 얹혀 더  끈끈하게 얽혀 있다.  얼굴만 쳐다봐도  서로 안에 산다. 누구 한 사람 잘못된 사람 없이 여전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쪼록 새해도  건강해서 오래 동행하기를 빌어본다.
  행복이란 대어를 낚아 돌아오는 가슴이 따뜻하다.  임인년 한해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계묘년 첫 날을 기대한다. 오너라. 두팔 벌려
환영하며 맞이 하리라. 행복을 싣고 오는 소리. 너를 생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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