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구운 김

조은미시인 2022. 12. 29. 23:43

구운 김
조 은 미

연말이다. 따뜻함을 나누고 싶은 계절이다. 오늘 가까운 지인에게서 귀한 선물을 받았다. 집에서 김을 굽다 내 생각이 나서 싸가지고 왔단다. 그 정성과 성의가 눈물나게 고맙다. 요즘은 손쉽게 구이김을 동네 마트에서도 살 수가 있다. 손수 집에서 구운 김을 먹어보기는 오랜만이다. 워낙 손이 많이 가다보니 번거롭고 귀찮아 아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집에서 김을 구워 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포장을 펼치니 고소한 들기름내가 진동을 한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인다. 한장 입에 넣어본다. 어릴 때 먹던 그 맛이다. 향수가 느껴진다.

그 시절은 너나 없이 어렵던 시절이라 무엇이던 귀했다. 산골 마을에서 김은 귀한 손님이 오거나 명절 때나 되어야 맛볼 수 있는 반찬이었다. 솔가지에 들기름을 발라 소금 솔솔 뿌려가며 재운 뒤 화롯불에 구멍쇠 받치고 석쇠에 굽는다. 온 집안에 퍼지는 김 굽는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턱 받치고 앉았다가 김 썰 때 나오는 부스러기를 집어 먹으면 얼마나 맛나던지. 하얀 이밥에 김 한 쌈 싸서 소고기 무국하고 먹던 그 행복감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선물은 관계를 친밀히 엮어주는 윤활유가 된다. 한참 잠잠해가던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주변에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지인들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선물을 받은 감동을 흘려보낸다. 문병을 가보지 못 하는 미안함에 마음 담은 작은 선물을 위로차 보낸다. 변변치 않은 선물에 고맙다는 감동의 답글들을 보내온다. 선물을 받을 때 만큼이나 흐믓하다.

새벽 예배 때 필라델피아를 섬기는 이태후 목사의 선교 현장 비디오를 시청했다. 미국에도 그런 빈민가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한 달에 백여만 원을 내는 월세 집이 쓰러져가는 폐가 같다. 씽크대 문짝은 덜렁거리고 유리창도 창틀이 다 어긋나 문이 제대로 닫기지 않는다. 주거 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동네에서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는 집이 그렇다니 주변 횐경이 어떤 곳인지는 미루어 짐작이 된다. 가난과 범죄가 일상화된 그야말로 최하위 계층의 극빈자가 살고 있는 동네다. 주민들의 표정은 굳어있고 행동도 거칠다. 살인, 절도, 폭력이 난무하는 범죄 소굴로 찾아들어가 버려진 이웃들을 돌보는 성자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더러운 골목길을 비로 쓸고 집집 마다 화분을 사다 놓았다. 헐벗은 아이들에게는 옷과 음식을 챙겨주었다. 마을의 필요한 일에는 몸으로 앞장서 뛰었다. 마음이 닫혔던 이웃들이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길에서 만나면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도 생겼다. 하나 둘 복음을 받아들이고 관심을 보이더니 지금은 교회가 설 정도로 크리스챤 숫자가 늘어났다. 목사님도 모두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이웃 사랑에 큰 감명을 받았다.

누가 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늘상 듣던 설교이다. 목사님의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에 큰 울림이 남는다. 나는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이었나 돌아보게 된다. 주변의 편한 관계의 나눔에만 신경 썼던 부족한 모습을 깨닫고 부끄러워진다. 손이 너무 짧았다. 나와 관계 없는 이웃들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와닿지 않았다. 내 주변의 나이스한 관계에만 안주했었다. 도움이 필요한 강도 만난 자를 외면하고 그냥 지나쳤던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내가 아니었을까? 진정한 사랑의 나눔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마음을 따사롭게 했던 구운김의 감동이 더 길어지는 팔로 확산 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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