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진 예총 문화기행 소묘
조 은 미
봄 가뭄으로 대지가 바짝 타들어간다. 연 3일 반가운 비소식이 들린다. 어제 밤부터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강릉 일원으로 광진 예총에서 문화기행을 떠나는 날이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은 늘 설레임이 있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본다. 잔뜩 흐렸다. 기다리는 단비였음에도 비가 안오니 다행스런 생각이 든다. 가벼운 마음으로 서둘러 집을 나선다. 뺨에 닿는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약속 시간보다 30 여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대기 중인 버스에는 벌써 여러분이 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다. 광진구의 예술 단체가 함께 떠나는 문화기행이다. 버스 2대에 52명이 참여했다. 같은 예술인이라는 유대감으로 서로 친밀함을 느낀다. 구청의 행정국장을 비롯한 주무 부처 과장들이 우정 배웅을 나왔다. 대접 받는 기분이 든다. 광진의 예술인으로 자부심과 책임감이 어깨에 실린다. 8시 30분 정각에 목적지를 향해 버스가 출발했다.
광진문협 새 집행부가 들어선 후 갖는 첫 행사이다. 이름과 일정까지 적힌 명찰을 만들어 나눠준다. 새로운 사무국장의 성실함과 행정능력의 탁월함이 엿보인다. 앞으로 더 발전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김지영 회장이 간식을 일일이 손수 포장해서 나눠주는 정성도 고맙다. 해쑥 향기가 물씬 나는 따끈한 떡과 물을 준비해준 예총 사무국장의 수고에도 감사한다. 이런 행사가 있을 때 누군가의 헌신은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3시간여 달려 주문진 어시장에 닿았다. 싱싱한 각종 수산물이 가게 마다 풍성하다. 어른 머리통만한 킹크랩, 무더기로 좌판에 놓인 홍게가 눈길을 끈다. 점심은 어시장 근처 식당에서 회와 매운탕이 준비 되어 있었다. 회와 함께 따라나오는 곁들임 반찬을 기대했었는데 빈약한 밥상이 조금 실망스럽긴 했다. 워낙 물가가 올라 회비로는 교통비도 빠듯했을 터인데 회로 점심을 먹이느라 애쓴 임원진들의 노고가
십분 이해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 회원들 얼굴에 아쉬워 하는 표정은 있었지만 누구도 드러내고 불평하지 않는 성숙함에 예술인다운 품격이 느껴졌다.
점심 후 오죽헌으로 향한다. 언제 와서 봐도 정갈하고 단아하다.
단종 시대 병조 참판과 대사헌을 지낸 최응현의 고택으로 신사임당의 외조부 이사돈에게 물려준 저택이다.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본채는 소실되고 별당만 남아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두 모자가 오만원권과 오천원귄의 화폐 인물이 되어 우리에게 더 친숙한 분들이다. 화폐에 등장하는 건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본다.
율곡이 태어난 몽룡실, 영정을 모신 문성사, 유품 소장각인 어제각등을 돌아 본다. 시간이 없어 샽샅이 다 훑어 보지 못 하고 돌아선다. 오죽의 새 잎들이 싱그럽다. 벗은 배롱나무의 나신에서도 꿈틀거리는 봄 기운이 느껴진다. 붉은 선혈을 토하며 꽃이 흐드러질 때 쯤 따로 한 번 와서 찬찬히 돌아보리라 마음 먹는다.
마지막 행선지인 경포호로 향한다. 벚꽃이 벌써 지고 끝 무렵이다. 몇 잎 남은 가지가 그래도 아쉬움을 달래준다. 강릉의 명물인 스카이베이 호텔이 가까이 보인다. 갈대가 지키고 있는 잔잔한 호수는 한 폭의 그림이다. 파릇 파릇 올라오는 쑥과 노란 민들레가 가을의 착각에서 깨어나게 한다.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 앞에 서면 늘 겸허해진다. 몇 번 다녀간 강릉이지만 누구하고 오느냐에 따라 사뭇 느낌이 달라진다. 근 10 여년 가까이 만나온 문우들과의 여행이기에 더 푸근하고 즐겁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터놓고 만나는 것만큼 따사롭고 행복한 일이 있을까! 호수만큼 잔잔한 평화가 내려앉는 가슴에 봄 기운이 따사롭게 번진다. 돌아오는 버스에 편안히 몸을 싣는다. 아직 함께 할 문우들이 있고 건강하게 내 발로 다닐 수 있음이 감사하다. 어둠이 짖게 깔린 서울에 무시히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용케 참아주었던 비에 감사한다. 날씨까지도 한 몫 거들어 편안했던 문화 기행에 서로를 잇는 끈이 조금은 더 든든해졌으리라. 마음이 머물렀던 따사로움과 여행을 위해 수고한 임원들에게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