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 언저리
조 은 미
설레임으로 새 아침을 맞는다.일찍 눈이 떠졌다. 매일같은 일상에서 특별한 하루는 기다림이 된다. 오늘은 마을 향우회에서 속초로 나들이 가는 날이다. 이 마을에 살다 고향을 떠난 분들과 현재 살고 있는 분들이 모두 함께 모이는 축제 날이다. 고향은 엄마라는 말만큼이나 우리를 푸근하게 한다. 이곳에 사는 분들은 외지분들도 많다. 고향을 떠났다 향우회 때 만나는 분들은 그 감회가 남다르리라. 외지 분들도 어느새 정이 들어 고향처럼 한데 어울어져 살아간다. 조항마을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은 정이 되어 서로를 끈끈하게 엮어 준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 조항 마을은 이름만큼이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여 마을을 감싸고 있어 어디를 보나 우거진 푸른 숲이 한폭의 동양화를 펼쳐놓은 듯 아름답다. 환경은 사람을 만든다. 아름다운 동네에서 살아서 그런지 사람조차 아름답게 닮아간다. 더러 타지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위해 귀촌하면 텃세가 심해 정착하지 못 하고 떠나는 사례가 많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우리 마을은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 편안하게 정착해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환영 받는다. 도둑이 없어 집집마다 마당이 열려 있다. 대문이 있어도 한번도 잠궈본 일이 없다. 서울에 몇달씩 가 있을 때도 늘 열어둔 채로 그냥 다닌다. 이 마을에 사는 또 하나의 자부심이다.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서 지키는 다른 시골과는 달리 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마을이 활기가 넘친다. 물맛이 좋아 지하수를 바로 식수로 사용 하는 청정 지역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1시간 정도의 근접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전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점점 이곳을 찾는 이가 늘어난다. 1가구 2주택이 해당되지 않는 접경 지역의 혜택이 있어 땅이 나기 무섭게 팔려 새 집을 짓고 이사 하는 분들이 많다. 인심좋은 이웃들이 가까이 있어 외롭지 않은 것도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따뜻하게 차려 입고 마을 회관으로 나갔다. 버스 2대가 대기 중이다. 서로 반갑게 인사들을 나누고 버스에 올랐다. 차비도 받지 않고 일체를 향우회에서 부담하는 여행이지만 기부금이 몇 백만원이 넘게 걷혔다는 총무의 보고를 들으며 서로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져 행복하다. 오랜만에 만난 기쁨은 출발부터 화기애애하게 무르익는다. 술에 취하지 않아도 노랫가락이 절로 나오는 흥겨운 분위기가 따뜻하다. 술잔과 안주가 한 순배씩 돌고 어깨춤들이 들썩일 즈음 너나 없이 정겨움으로 하나가 된다. 삶의 활기가 퍼득인다. 넘치는 열기가 버스 안을 채운다. 강원도 들어서니 폭설이 퍼붓는다. 온천지가 하얗다. 한껏 낭만에 취한다. 대포항에 닿으니 다행히 눈발이 멎었다. 외옹치의 겨울 바다가 가슴에 찬다. 얼굴에 닿는 바닷 바람이 상큼하다. 둘레길을 걷지 못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쉽다. 점심에는 거하게 회로 입이 호사를 한다. 매콤하고 새콤 달콤한 물회의 목 넘김이 입맛을 돋운다.
좋은 사람들과 식사는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건어물 시장에들려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눈발을 피해 다른 일정을 생략하고 귀갓길을 서두른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여전히 흥겨움은 더한다. 열린 마음 속에 서로가 들어와 앉는다. 설악 인터체인치를 내려서니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눈길에 무사히 돌아왔음에 안도한다. 푸짐하게 썰어넣은 돼지고기에 부글부글 끓는 김치찌개 한 냄비 가운데 놓고 저녁까지 먹고 여행을 마무리한다. 김치 찌개만큼이나 정겹고 따사로왔던 하루가 저물어간다. 눈이 펑펑 내리는 저녁 고향의 푸근함이 가슴에 녹는다. 수고하셨던 임원진께 감사를드린다. 또 하루 내 삶에 덧셈의 동그라미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