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상위 허와 실
조 은 미
아직 장마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생색내듯 햇볕이 반짝 난다. 아침부터 햇살이 따가운 걸 보니 어지간히 더울 모양이다. 온통 눅눅했던 거실 창문을 활짝 열고 햇살을 불러들인다. 폭염 주의보가 떴다. 일찌감치 밖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집에서 뒹굴기로 한다. 이런 날은 무언가 특별한 음식이 땡긴다. 유투브를 뒤적이니 먹음직스런 호박 구이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 며칠 전 이웃에서 준 호박이 생각났다. 냉장고에 남은 야채들을 처리할 겸 호박 구이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가지, 피망 양파, 청양고추, 햄, 맛살, 파등 있는재료를 모아 송송 썰고 두부도 물기를 짜 으깬 후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소금, 후추 간을 해서 함께 볶는다. 호박은 반을 갈라 속을 파내고 배 모양을 만든다. 소금 한 꼬집 뿌려 밑 간을 해놓는다. 볶아 놓은 야채를 호박 속에 채운 후 계란을 풀어 위에 얹고 15분 정도 오븐에 굽는다. 구워진 호박에 피자 치즈를 얹어 녹을 때까지 한 번 더 굽는다. 호박 찌개나 새우젓 넣고 나물로 볶아 먹어는 보았어도 구이는 처음이다. 처음 해본 레시피가 어떤 맛일까 자못 궁금했다. 남은 속은 계란과 부침가루를 넣어 전으로 부쳤다
토마토 케챂을 뿌려 한 입 베어먹는 순간 와 이렇게 맛날 수가! 절로 행복해진다. 먹고 싶은 요리를 마음만 내키면 해먹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해도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형벌과도 같았다. 수도물도 없던 시절 고개가 휘도록 무거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샘물에서 물을 길어 날랐다.
아궁이에 솔가지 때며 매운 연기에 눈물 범벅이 되면서도 끼니 때마다 식구들 더운 밥을 해 먹였다. 아이들을 밭둑 나무에 띠로 매놓고 쉴 틈도 없이 밭일을 했다. 겨울이면 손 호호 불어가며 개울에서 잿물 내 삶은 빨래를 손이 곱도록 방망이로 두드려 빨았다. 저녁이면 호롱불 밑에서 밤 늦도록 바지 저고리 꿰매 입히고 누에 치고 길쌈 하고 해도해도 일이 끝이 없었다. 남편은 하늘인 줄 알고 순종하며 온갖 어이없는 짓을 다 하고 다녀도 큰 소리 한 번 못치고 살았다. 매운 시집살이에 가슴이 멍 들어도 그저 참아내며 그러련 하고 살았다. 불과 몇 십년 전의 일이다. 어느새 이런 일들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 만큼이나 생경스럽다.
요즘은 여인 천국시대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대접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오는 젊은 커플들을 보면 으례 남자가 취사를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등신과를 전공한 것도 아닐텐데 여자 앞에서 모든 남자들이 등신이 되어 산다. 그래야 가정이 화목하고 밥이라도 얻어 먹고 사니 참 세상 많이 달라졌다. 한 달 내 일해서 월급 고스란히 아내한테 갖다 바치고 눈치보며 용돈 타 써도 그게 행복으로 알고 살아 간다. 새벽에 일을 나가도 부인이 깰까 봐 살금살금 일어나 맨 입으로 나가는 남자들도 많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요즘 세상에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로또에 당첨된 것만큼이나 행운 인 것 같다. 웬만큼 벨 있는 남자는 장가가기를 꺼리고 혼자 사는 쪽을 선호한다니 여성 상위가 실낙원이 될까 저으기 걱정스럽다. 돕는 베필로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 여자를 만드셨던 조물주의 뜻과 질서가 회복되는 사회가 복락원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무더운 여름 날 지쳐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상을 봐 놓고 기다려주는 아내가 있는 가정은 얼마나 따스하고 행복할까?
가족을 위해 맛난 음식을 만드는 주부의 행복이 고전이 되어버린 요즈음 일방적 여성 상위가 아니라 사랑의 바탕 위에 서로 존중하고 연합하는 아름다운 가정이 회복 되기를 기대한다.
'자작 수필,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가위 보름날만 같아라 (6) | 2024.09.18 |
---|---|
웃음이 머무는 언저리 (8) | 2024.09.16 |
열매 없는 나무 (0) | 2024.07.09 |
봉숭아 꽃물을 들이며 (0) | 2024.07.08 |
미역전을 부치며 (0) | 2024.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