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보름달만 같아라
조 은 미
날마다 오는 같은 날들이지만 추석이라는 이름이 따라 붙으면 특별한 의미가 된다.
모두 명절 준비에 바쁘다. 이런 날 혼자만 한가하면 어쩐지 이방인 같은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는 식구들을 위해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메뉴를 정해본다. 이것 저것 장을 보며 마음이 풍성해진다. 나박김치와 깻잎 오이 피클, 참외 김치는 미리 담가 두었다. LA 갈비와 꽃게 찜, 문어 숙회, 고추 잡채, 새우 호박전, 깻잎 전과 나물 두어 가지, 민어 구이, 송편까지 준비 하니 명절 기분이 든다. 앞으로 추석 음식을 몇 번이나 더 내손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이들이 엄마 손 맛을 기억하며 그리워할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일하는 것도 즐겁고 신이 난다.
아침 일찍 "어머니 저희 왔어요."하며 들어서는 아들 , 며느리의 밝은 목소리에 반가움이 마주 내닫는다. 싹싹하고 상냥한 며느리를 보면 절로 입이 벙근다. 내 선물과 용돈, 시누이 선물에 조카 용돈까지 챙기는 엽엽함이 사랑스럽다. 뒤미처 들어서는 딸네 식구들 까지 반가움을 더한다. 그새 더 예빼지고 의젓해진 외손녀딸을 보며 얼마나 흐믓하고 대견스러운지!
장성한 자식들을 보면 사는 보람이 느껴진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제 몫을 하며 화목하게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이 고맙고 감사하다. 화기애애한 담소가 이어지고 차려진음식마다 맛있다고 칭찬이 늘어지는 아이들 덕에 온통 명절이 나를 위해 있는 날인듯 행복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먹어주는 것을 보는 기쁨은 여자만이 누릴수 있는 최상의 특권인 것 같다. 점심 후엔 분위기 근사한 카페로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외손녀딸이 알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커피를 쏜다며 나선다.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리 컷나 싶어 가슴이 뭉클해진다. 천국은 꼭 죽어서만 가는 곳은 아니다. 서로 사랑하며 이 땅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면 그곳이 천국이다. 사랑과 이해, 용서와 화해가 있는 곳이면 어디나 천국이 아닐까?
딸네 식구가 시댁으로 떠나고 아들 내외와 성묘를 다녀왔다. 남편 묘비 앞에 서니 울컥 그리움이 솟는다. 남편과 내 사진이 나란히 웃고 있다. 마주 웃어준다. 언제나 가슴에 사는 이. 때로 사무치게 보고 싶지만 늘 함께여서 외롭지는 않다.
추석날 아침 집안을 정갈하게 치우고 추도 예배를 준비한다. 길가에 코스모스와 맨드라미를 꺾어다 꽃병에 꽂았다. 조촐하게 셋이 드리는 예배지만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에 감동과 감사가 넘친다.
아버님, 어머님, 친정 아버지, 엄마 남편까지 나란히 쇼파에 앉으셨다. 생전에 사랑해주시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이 난다. 과묵하지만 정이 깊으셨던 시아버님, 언제나 인자하셨던 어머님 , 나를 당신들 보다 더 귀히 여기셨던 엄마, 아버지, 가족을 극진히 사랑하고 책임을 다했던 남편. 너무나 좋은 분들을 부모로 배우자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새록새록 감사와 감동이 인다. 아! 보고 싶은 분들. 시들지 않는 그리움을 삼키며 코끝이 찡해진다.
" 우리 어머닌 이틀이 한계야. 더 있으면 큰일 나." 농담을 흘리며 깔깔대는 며느리의 웃음소리가 정겹다. 서둘러 집안을 치우고 남편을 채근해 일찍 나서는 며느리의 배려에 가는 뒤통수 마저 예쁘게 보인다. 자식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더라. 어느새 우리 나이가 그렇구나. 일 할 때는 모르는데 여러끼니 차리는 것이 벅치긴 하구나. 기쁨과 아쉬움 가득 남겨놓고 떠난 빈 자리. 비로소 혼자가 되어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따뜻한 평화가 남실댄다. 둥근 달이 휘영청 밝다. 모두들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비는 마음으로 보름달을 가슴에 담는다. 솔바람에 행복이 그네를 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은 날들이 한가위 보름달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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