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머무는 언저리
조은미
대학 동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깜박 눈을 떠 시계를 본다.
이제 겨우 4시 반을 넘기고있다
일어나기는 이른 시간이다
설레는 마음이 먼저 달린다.
카톡을 열어 참석자 명단을 훑어 보았다.
낯선 이름도 여럿 눈에 띄인다.
현관을 열고 뜨락에 내려서니 비가 부슬거린다. 모처럼 나들이에 비가 더 많이 오지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동기 모임 중 매달 네째 화요일에 만나는 등산 모임이 있다.
무릎이 시원찮아 부러운 마음만 앞섰지 따라나설 엄두를 못냈다. 이번에 그런 친구들을 위해 평지를 걷는 금요 산책을 새로 기획해준 임원들의 배려가 고맙다.
미사 조정 경기장 둘레길을 도는 간단한 산책과 더불어 숲속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친구들의 작은 야외 전시회도 함께
가질 예정이다. 내 시화도 몇 점 같이 걸기로 되어 있어 두어점 차에 싣고 가기로 했다.
약속 시간 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허원봉 감사의 안내를 받아 전시장과 집결 장소를 둘러보았다.
빗자루와 걸레까 준비해온 주밀함에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앉을 의자와 평상을 꼼꼼이 걸레질 하며 친구들 맞을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비가 멎었다. 초록 융단이 깔린 넓은 잔디밭의 싱그러움과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의 아름다움에 취해 심장이 멎을 듯 가슴이 얼얼해진다. 간간히 낙엽져 구르는 나뭇잎새에 가을의 입질이 느껴진다
시간이 되니 삼삼오오 친구들이 모여든다. 함박 웃음이 뒤엉켜 구르고 모두 시간을 되돌리는 주술에 걸린 듯 생기로 넘처난다.
숲 길을 걸으며 야외 전시장으로 이동했다.떡이며 약식, 과일과 손수건을 선물로 준비해온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훈훈함이 익어 간다. 졸업 후 처음 보는 친구들과 이름을 몰라도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순간 소통의 다리가 놓인다. 작은 숲 속 전시회! 그동안 열심히 작픔 활동을 해온 벗들의 작품을 대하며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어떤 전시회보다 더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날들. 헉헉 거리며 정상에 오르던 젊은 날의 보람도 소중하지만 내려오는 길의 여유롭고 편안함도 더 없이 좋다. 이제서야 뒤도 돌아 보고 옆도 보이기 시작한다. 같은 직종에 근무하며 가장 가까운 조력자로 때로는 숨은 경쟁자로 미묘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던 날들도 있었을 터이지만 이제 계급장 떼고 서로의 민낯을 보며 평준화된 인격으로 만난다. 가까이 자주 보며 자세히 보게된다. 열린 빗장 사이로 한 발자국 씩 가까이 다가선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에 느끼지 못하던 은은한 향기가 난다. 곱게 익어가는 모습에 점점 정이 깊어진다.
같은 캠퍼스에 머물렀던 동기라는 인연만으로도 몇 십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얘, 제 ,너 ,나 하는 해라가 자연스럽다.
데크길을 따라 느릿느릿 걷는다. 구름도 흐르고 산들 바람도 따라온다, 연꿏이 진 잎만 무성한 연못의 푸르름도 눈을 시원하게 한다. 꽃 피었을 때 화사함도 사랑스럽지만 깊은 초록의 성숙함도 의연해 보인다. 회비 만 원 내고 분에 넘치게 받는 맛난 점심 상 앞에 입이 벙근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손길들이 머무른 흔적이리라. 거저 되는 일은 없다. 누군가의 헌신과 사랑이 댓가로 지불될 때 주변이 밝아지고 행복해진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준 임원진들과 사랑을 나눔해준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늙어간다는 건 비단 육체적인 뇌쇠함 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희로애락의 감정이 무뎌져 공감지수가 낮아질 때 우리는 노인의 반열에 한 걸음 다가설 수 밖에 없다 .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아직 젊다는 증거이다. 이 나이에 가슴이 뛰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오래 동행하며 늘 웃음의 그늘에 머무는 날들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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