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봉숭아 꽃물을 들이며

조은미시인 2024. 7. 8. 18:58

봉숭아 꽃물을 들이며
조 은 미

  장맛비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봄비처럼 보슬 보슬 내린다.  장맛비라면 으례히 주야장천 주룩주룩 쏟아지며  제발 그만 왔으면 하고 진저리를 칠만큼 내렸었는데 요즘은 순한 양이 되어 제법 귀염을 떤다. 간간히 쉬어가며  햇빛이 반짝 나기도하고 선선한 바람을 선사하는 아량까지
베푸니 숨겨진 속내를 알 수가 없다.
흐린 하늘이 언제 토라질지?  그네에  흔들리며 아리송한 회색지대에서 어정쩡한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를 해본다.

  파크 골프 치느라 소홀했던 텃밭을  돌아보기로 한다. 주인 발소리가 뜸해진 틈을 타 풀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
촉촉해진 땅에  그악을 떨던 풀들이 얼마나 잘 뽑히는지. 한바탕 손끝이 자나간 자리엔 토마토, 가지, 고추가 얼굴을 내밀고 숨을 쉬며 허리를 편다.
  화분에 뿌렸던 채송화 씨가 어느새 꽃을 피웠다. 공들여 가꾸지 않아도  혼자  잘 자라는 모습이 대견 스럽다. 끝물인 줄장미가 아직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뒤란에 봉숭아도 탐스럽게 꽃잎이 벌었다. 봉숭아는 언제 보아도 애잔하다  수줍게 고개 숙인 꽃을 바라보노라면 까닭 없이 서러움이 돋는다. 백반이 귀하던 시절 시큼한 괭이풀 뜯어 소금 한 꼬집 넣고  꽃잎을 짓이겨  꽃물 들여 주시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봉숭아 잎사귀로 감싸 꽁꽁 처맨  손가락이 행여 벗겨질세라 사로잠을 자기도 했다. 가슴 한편 밀쳐두었던 묵은 그리움이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눈물나게 뵙고 싶다. 칠십이 훌쩍 넘어도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 아이가 된다. 멍울진 그리움이 목젖에 얹힌다. 한 웅큼 봉숭아 꽃잎을 따 백반을 넣고 콩콩 찧어 손톱에 올렸다. 인내를 가지고 한나절이 점도록 놓아두었다 . 추억에 올라탄 유년이 빨갛게 손톱에 내려앉았다.

  물이 든다는 것은 서로 닮아가는 것일게다. 한 집에서 오래 같이 산 부부를 보면  어딘가 둘이 비슷해 보인다. 자연 안에 하나 되어 살다보니 어느새 자연을 닮아 푸근하고 넉넉해짐을  느낀다.  봉숭아 꽃물이 든 손톱이  정겹다.  날만 새면 서로 헐뜯고 상대를 끄집어  내리느라고  여의도 하늘은  먹구름이  걷힐 날이 없다. 봉숭아꽃처럼  서로에게서 풍기는 인향으로 세상을 곱게 물들이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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