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열매 없는 나무

조은미시인 2024. 7. 9. 15:21

열매 없는 나무
조 은 미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뜨락을 내려선다. 안개가 산허리에 걸렸다.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듯 신비함이 감돈다. 숨이 멎을 듯햔 선경에  취한다. 뉘라서 이리도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이런 환경을 값없이 누리게  하시는 그분께 진심으로 경이감과  감사가 솟는다. 아직 비는 부슬 거린다.

  어젯 밤에도 바람이란 녀석 꾀나 해살을 놓았나 보다. 얼치기 농부를 만나 약 한 번 안쳐준 살구 나무에 그래도 용케 몇 알 달려 버티고 있더니  간밤 비바람에 그예 땅에  떨어져 널브러져 있다.. 제법 노랗게 익었다. 그나마 다른 해는 익기도 전에 다 떨어져  어떤 맛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 땅에 떨어진  것이지만  익은  살구를 처음 보는터라 반가웠다. 얼른 한 입 깨물어 보니 달달하고 새콤한 맛이 얼마나 맛난지!  좋은 종자의 살구나무 였다. 태생은 귀하게 태어났지만 그간 한 번도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  나무로 무익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부지런한 농부를 주인으로 만나 제대로 보살핌을 받았으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보람을 안고 살 수 있었을텐데. 수령이 15년은 넘은 한창 나이인데도 제 구실 한 번 못하고 살아가는 살구니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문득 나를 돌아본다. 아무 뜻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리라. 나를 만드신 주인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기를 원하며 최고의 걸작품으로  나를 이 땅에 보내셨다.
주인의 손길 안에 붙들릴 때 보살핌을 받고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건강한 열매를 맺는 보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이다. 주인 손을 떠나 내 멋대로  살아갈 때 바람 한 번 불면 땅에 떨어지고 마는 잎만 무성한 나무로 살아갈 수 밖에 없으리라.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니다. 오늘이라도 부르시면  갈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의  삶이다. 나의 주인이 누군 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길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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