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오는 정, 가는 정

조은미시인 2025. 3. 18. 19:39

오는 정, 가는 정
  조 은 미

여고 동창들과 소사에서 정기 모임이 있는
날이다. 오늘부터 눈이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다
어젯 밤 늦게까지 별 징후가 없었다. 혹시  밤새 눈이 내려  눈 속에 갇힐까  노파심에 차를 대문 앞까지 빼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버스 타고 나가려면 일찍 서둘러야 한다. 샤워 후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여니  온 세상이 하얗다. 발목이 묻힐만큼  눈이쌓였다.굵은 눈발이  아직 그치지않고 내린다. 도저히 나설 형편이 안된다. 카톡에 벌써 걱정스런 문자들이 떴다. 다음으로 미루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계획은 사람이 세워도  우주를 운행하시는 분의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나이드니 조바심칠 일도 바상거릴 일도  없어 좋다. 엎어지면 쉬어가면 되고 가다 막히면 돌아가면 된다는 여유가 생긴다. 소복소복 눈꿏이 핀 가지마다 몽환적이다. 설경에 취해 넋을 놓고 바라본다. 온갖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따사로움이 손끝을 타고  커피 잔에 녹아든다.  눈속을 뚫고 택배 기사가 다녀갔다. 친구가 보낸 약과 한 상자가 배달되었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에 감동으로 가슴이 뛴다. 학교 때는 얼굴도 마주친 적이 없었지만  요즘 동기들  모임에서 자주 만난다. 온화한 미소와  단아한 모습의 그녀에겐  세월의 흔적이 비켜간 듯  아직도 그 시절  풋풋함이 남아있다. 내 글에 대한  진심이 넘치는공감과 따뜻한 격려가 고맙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관심이 기울고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진다.
첫사랑에게 사랑을 고백하듯.고마운 마음을 담아 카톡으로 작은 선물을 보냈다. 그런데  뒤미쳐 이런  귀한 선물을 보내왔다. 그 넉넉한 마음씀이  고맙기도 하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는것 같아  어째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전화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진솔함에 더 깊이 매료된다. 가까이 알고 보면 참 보석 같은 친구들이 많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좋은 친구가 되어 보자.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늙는다는 것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무뎌지는 것 아닐까? 작은 기쁨에 감동하고  아직도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주고 받을 수있는 감성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누군가의 따뜻함이 되고 감사의 조건이 되는 일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서로 정이 흘러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 매번 전화해도 한 번도 먼저 전화해주지 않는 친구,  만날 때 마다 밥 사고 차 사도  한 번도 갚음이 없는 친구,  아무리  친해도  어느새 거리가 생기게  된다. 비단 친구 뿐이겠는가? 부모 자식간에도, 부부 지간에도  일방통행은  관계를 소원하게 한다. 서로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오는 정, 가는 정으로 서로 안에 살 때 우리 삶은 좀 더 따뜻하고 윤기가 촉촉해지지 않을까?  때 늦은 눈이 내리는 날, 또 다른 특별한 기쁨을 선물해준 고마운 벗에게 감사한다. 이러한 교감이 우리를 더 든든히 묶어주는 끈이  되리라.따뜻한 봄 햇살에 어느새  나무의 눈 꽃들이 다 녹아 내렸다. 촉촉해진 나무들의  봄 터지는 소리도 곧 들리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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