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개나리 산바라지

조은미시인 2025. 3. 26. 02:11

개나리 산바라지
   조 은 미


  숨이 턱에 닿게 달려온 봄이  몸을 푸는지 햇살이 스친  자리마다 온통 산통으로  천지가 들썩인다.
  눈 밭에서 복수초가 맨 먼저 눈을 뜨더니  섬진강 매화가 바람났다 소문도 풍문에 들린다. 드디어 봄이 서울까지 치마폭에 감싸고 응봉산에  노란 개나리를 출산 했다는 소식이다.

  오늘은 서울교대 동기 등산 모임인 화사회가 모이는 날이다. 등산은 감히 엄두도 못내다 산 축에도 못드는 언덕이란 소리에 용기를 내어 큰 맘먹고 참여하기로 한다. 어느새 겉옷이 무겁다. 청바지에 꽃무늬 티셔츠 차람으로  산뜻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아침 안개가 저도 동행하자고 앞서 내닫는다.  친구들  만날 생각에 마음이  앞서  달린다. 운좋게 7시10분 차가 바로 들어 섰다. 흔들리는버스 차창에  보고픈 얼굴들이 하나씩 스친다.  잠실에서 내리니 시간이 너무 이르다. 김밥집에서 아침 요기를 하고 느긋이 일어선다.
집결지인 응봉역에  도착하니 하나 둘 반가운 얼굴들이 모여든다. 빨강, 노랑, 파랑  점퍼들에 봄이 내려앉았다. 정작 학교 때는 얼굴도 모르고 지내다 자주 만나다 보니 이젠 이름을 불러줄 만큼 가까워져  눈만 마주쳐도 살갑다. 언덕을 오르기가 꾀 되다. 곧 숨이 헉헉 찬다.
쳐지는 친구들을 위해 쉬엄쉬엄 보조를 맞춰주는 배려가 고맙다. 몫몫이 간식을 챙겨와 나눠주는 넉넉함은 늘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계단을 오르니 갓 눈뜬 개나리들이  온통 별이 되어 반긴다. 샛노란 봄빛이 가슴에 배어든다.
꽃별을 삼킨 입술들이 봄을 토해낸다. 꽃속에 웃음꽃이  피어난다. 나이가 비켜가는 시간 속에   몸도 마음도 풋풋하게 물이 오른다.
비탈이  끝나는 평지 길은  여유롭고 편안하다.  서울 숲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숲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아직 봄이 만삭이 되려면 좀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수양버들 파릇한 잎눈의 눈짓이 싱그럽다. 마른 나뭇가지도, 다 삭은 빈 갈대도 봄이 한 번 보듬고 가면 곧 새 싹이 돋겠지.  우리의 삭막한 삶도 우정의 봄 볕이 스치면  초록 움이  돋아나려니.

  병 중에 제일 견디기 어려운 병이 외로움이라던가? 오라는 곳 있고 얼굴 보면 반갑게  맞아주는 벗이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한 일 일런지!  두 다리 성성할 때, 감정에 반응하며 웃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만나 서로의  활기가 되어 살아
가면 좋겠다.
따끈한 콩나물 국밥을 대접하는 손길에도 봄이 녹아 있다. 기다리던 개나리 산바라지로 행복이 남실 거리는 오후,  햇살도 바짝  등 뒤를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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