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요만큼만
조 은 미
근 2주만에 아버지를 모시고 묵안리로 향한다.
설악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엄소리 로 들어서면
언제나 한가롭고 푸근한 마음이 된다.
집앞의 백일홍이 여전히 정겨운 자태로 반기고
코스모스도 앙증스런 미소로 맞는다.
그렇게 성하던 풀들도 이제 한 풀 꺾였는지 그닥 그악을 떨지 않아 모처럼 편안한 마음이 된다.
2주전 수염 끝만 나풀 거리던 옥수수가 제법 굵었다.
잎들이 누래지는 걸보니 그게 제 한계인 것 같아 바람에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대들을 다 베어 추수를 한다.
손바닥 반만한 것들 40여통 따서 소쿠리에 담으니 부자가 된 것같다.
그것도 추수라고 누가보면 개가 다 웃을 일이지만 어찌나 대견한지
그중 제법 실한 것 열두어 토생이 골라 이웃집에 서너개씩 돌리며 첫 수학의 기쁨을 나눈다.
포도도 송아리라고 여닐곱개 매단 것이 고작이지만 한 바가지나 땄다.
대견스러운 것들!
전문적으로 농사짓는 사람이면 흉작에 울상이겠지만 그거라도 달려준게 얼마나 고맙고 신통한지
못나도 내 수고의 결정이라 더 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2주전에 심어놓은 배추도 제법 자랐다. 무우도 조금 늦었길래 모종을 사다 30여포기 심어놓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백일홍 꽃밭에 나란히 서 사진을 찍으며 따스한 마음이 된다.
아직 이만큼이라도 건강하셔서 옆에 계셔 주시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요양원에서 사람도 못 알아보고 말씀도 못 하시고 콧줄로 연명하고 계시는 엄마를 생각하니 이런 때 같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코끝이 싸해진다.
보글보글 삼계탕을 끓여 드렸더니 맛있다고 입가에 웃음이 벙그신다.
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요만큼만 행복한 날들이 계속되기를!
아버지 !
쑥스러워 대놓고 말씀도 못드렸네요.
사랑해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면서 제 울타리가 되주시고 곁을 지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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