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작시

멸치가 시를 쓰는 아침

조은미시인 2019. 11. 26. 11:54

 

멸치가 시를 쓰는 아침

 

조 은 미

 

내게도 파란 꿈으로 파닥거리던 풋풋한 시절이 있었지요

온 바다가 다 내 집인양 휘젓고 다니던 그런 때

 

내 선택은 아니지만 잠깐 한눈 팔던 사이 그만 그물코에 걸려 들려올려지고

내가 놀던 물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놓여지며 절망에 떨었지요

 

내몸의 물기가 말라가고 따가운 햇살이 때로 견디기 어려웠지만 가끔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의 위로는 내게 견딜 힘이 되어 주었지요

 

속으로 주저앉으려는 나를 부축여 일으켜 세우며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나라

또 다른 삶도 있다는 자긱은 나를 더 강하게 일어서게 합니다

 

이제 내 몸은 단단히 단련이 되어 진솔한 바다의 깊은 맛을 품고 은빛을 드러내며 새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내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삶은 아니지만 절망 안에도 늘 문은 나를 향해 열려있음을 깨닫습니다

 

매운 고추장 맛에 달달함을 섞어 변신한 모습으로

마음이 가난한 시인의 식탁에 올라앉아 그윽한 눈빛으로 시를 쓰는 아침

내 풍성함이 시인의 입속에서 기쁨으로 녹아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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