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추석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일찍 정갈하게 집안 청소를 하고 곱게 싸두었던 시어른 양위분, 친정 엄마, 남편 네 분의 영정 사진을 꺼내 진설하고 뜰에 피어 있는 가을 꽃을 끊어다 화병에 꽂고 촛불을 밝힌다.
격식 갖춰 차례상을 차리진 않지만 마음만은 정성스레 예를 다하고 사랑하던 분들을 추억한다.
평생에 잔소리라곤 입에 올리지 않고 사셨던 시어른들!
몇 십년 모시고 살았지만 큰 소리나는 일 한 번 없이 서로 구순하게 살수 있었던 건 후덕하시고 인자 하시던 어머님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당신 눈에 부족하고 거친 게 오죽이나 많았으련만 어디 가서 며느리 험담 물어내지 않으시고 늘 칭찬으로 소문 내주시던 어머님!
어머님 돌아가신 후 10년도 넘게 홀시아버님 모시며 그리 힘든 줄 모르고 살 수 있었던 것도 말씀은 없으셨지만 깊은 속정으로 늘 든든하게 지켜주시던 아버님 덕분이라 생각하며 감사한다.
시댁 쪽으로는 장남 이고 친정 쪽으로는 무남독녀라 친정 부모님도 함께 윗층에 모시고 살면서 시어른과 딸 사이의 완층 역활을 지혜롭게 감당하시며 딸 흉잡힐세라 시어른들 알뜰히 챙겨주시고 딸 대신 말벗을 해주시며 사돈간의 어려운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셨던 친정 엄마! 마누라가 최고인 줄 알고 사랑해주던 남편!
모두 뵙고 싶고 새록새록 그리워진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 명절 때마다 사진으로라도 한 자리에서 뵙고 베푸셨던 사랑을 추억하며 감사한다.
딸이 시댁에 들렸다 점심 때나 온다니 추도 예배는 딸네 식구가 도착한 후 드리기로 한다.
꼭 아침이 아니면 어떠랴?
식구들 다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는게 중요한거지 드리는 시간이 아무 때면 대수겠는가!
세상 만사 어떤 일이건 형식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지만 마음이 빠진 형식은 얼마나 허례이고 허상 일런지!
명절 때마다 도에 넘치게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허리가 휘는 며느리들이 명절 증후군으로 가정 불화가 나고 심지어는 명절 후 이혼율 까지 증가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면 명절이 과연 누구를 위한 명절일까 돌아보게 된다.
진심을 다해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고 감사하며 가족이 서로 화합해 명절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과 전통에 얽매어 중요한 것을 잃는 우를 범하며 즐겁지 않은 명절을 보내는게 과연 현명한 일인가 묻고 싶다.
매사 내 주장으로 결정할 수 있을 때 내 가고난 사후라도 며느리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명절 앞가르마를 솔선해서 타주려 내 나름 간소하게 가풍을 만들어 세워간다.
명절은 산 사람 위주로 즐겁게 지내면서 가족간의 행복한 만남이 우선 되어야하지 않을까?
차례 음식을 안차리니 수고도 덜고 잘 먹지도 않는 음식 남기는 낭비가 없으니 경제적이고 식구들이 평소
먹고 싶었던 특별한 요리를 한 끼에 한 가지씩 맛나게 해먹으니 가족 모두가 여유롭고 행복한 명절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이번 추석에도 갈비찜, 잡채, 연어스테이크, 비프스테이크, 새우 구이, 녹두전등 일품으로 준비하여 한 끼에 먹고 치우니 음식 낭비도 없고 끼니마다 새 입맛으로 맛나게 먹으니 식구들 입이 함지박이 된다.
차례 음식을 장만 하지 않으니 할 일도 없어 전날 미리 성묘 마치고 아이들과 좋은 곳에 나들이 하며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며 이게 명절이지 싶다.
남들이 보면 손가락질 할 일인지 모르지만 조촐하게 꽃과 촛불만 켜 놓고 영정 사진 앞에 들러 앉아 가족들의 마음을 담아 감사를 겸한 추도 예배를 드린다.
며느리에게 "너 이 정도는 나 죽은 다음에라도 할 수 있지?" 하니 "어머니 염려 마세요. 어머니 상엔 과일도 놓아드릴께요" 하며 웃는다.
난 어찌 그리 복이 많은 사람인지!
시어른, 친정 부모님, 남편, 딸, 아들, 사위, 며느리까지 심성 착한 인연들로 울타리 쳐주시고 경제적으로 큰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살 만하게 이 날까지 지켜주시고 건강을 허락하시니 이 또한 축복이고 감사한 일 아닌가?
올캐 시누이 사이에 정성스레 명절선믈을 주고 받고 우애있게 지내는 정겨운 모습을 보는 것도 얼굴에 미소가 머물게 한다.
모처럼 식구가 다 모여 점심을 맛나개 먹고 분위기 있는 찻집에 가서 따끈한 커피 한 잔씩 나누며 담소를 즐긴다.
진심으로 주신 축복에 감사하며 하루를 접는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둥싯 떠오른다.
나라 걱정만 없으면 만사가 형통한 추석 명절이다.
하루 속히 코로나가 종식되어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나라와 위정자들에 대한 모든 우려와 근심의 매듭이 풀어져 모두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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