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11월 초하루!
가을비가 아침부터 추적거린다.
거실 창을 통해 보이는 앞산 자락에
가을이 꾀나 깊었다.
잔디도 푸르름을 손절매하고 황금빛 담담한 모습으로 점잖게 뒤로 나앉아 겨울 채비에 들고 보기 보다 재바른 목련은 봄에도 제일 먼저 봄치레를 하더니 어느새 잎을 다 떨고 벌써 털복숭이 겨울눈을 내밀며 일찌감치 제 살길 단도리를 마쳤다.
도도한 것 같아도 정에 약한 장미만 아직 미련을 못 놓은 채 한가닥 목을 늘이고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며 혼자 늦가을 뜨락을 지키고 있는게 애잔해 보인다.
며칠 여기저기 가을 잡느라 애쓰고 다녔더니 그것도 된지 오늘은 꼼짝도 하기 싫어 황토방에 뜨끈하게 불
올리고 푹 땀을 흘리고 나니 찌뿌득하던 몸이 좀 가벼워진다.
온통 가을비에 촉촉히 젖은 마을 길이 비어 있는 듯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시집을 뒤적이며 넬레판타자아의 감미로움에 젖는다.
가을비 오는 날 오후!
마음도 비에 젖어 촉촉해진다
아련한 대상도 없는 그리움에 잠기며 고독을 즐긴다.
산 중턱에 물안개가 걸려 뽀얗게 피어 오른다.
비가 걷히려는가 보다.
서서히 시장기가 돈다
군고구마를 굽는다.
구수하고 달큰한 내음이 거실을 채운다.
따끈한 삶은 계란에 커피를 곁들여 늦은 점심 요기를 한다.
한껏 달달한 게으름에 몸을 맡기고
딩굴고 싶은 날!
가을비 오는 날의 적막함이여!
고독을 즐기는 낭만이여!
가슴 언저리에도 하앟게 물안개가 핀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저만큼
어슴프레 땅거미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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