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빗속의 비수구미 소회

조은미시인 2021. 5. 28. 07:10



















빗속의 비수구미 소회
조 은 미


갑작스레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 용태가 안좋아 취소했던 화천 비수구미 버스 당일 여행을  다시 회생하신 아버지 덕분에 그간 마음 고생 힐링이나 하고  오자는 친구의 강권에 고맙게 따라나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잔뜩 흐린 날씨가  버스를 타자 그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초록이 짙게 익어가는 풍경들이  비에 씻겨 더 싱그럽게 차창을 스친다.
2시간 30여분 달려 해산령 입구의 비수구미 마을 들어가는 철책 문 앞에서 버스를 내린다.

비수구미란  물로 빚은 아름다운 아홉가지 경치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되는 궁궐에서 쓰는 나무를 함부로 베지 말라는 비소고미 금산 동표가 바위에 새겨져있는 것으로 보아 비소고미로 불리던  것이 비수구미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가이드 설명이다.
6ㆍ25 직후 화전민들이 숨어들어 100여가구가 살던 이 곳은  평화의 댐을 건설하며 파로호 물길이 끊겨 수몰되어 육지의 섬으로 당그만히 남게된 마을로 지금은  모두 떠나고  단지 3 가구만 남아 오지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박도 하고 산채비빔밥  식당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다.

해산령 입구  철책의 쪽문을 통과해서 6km 정도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꾀 넖은 외길의 임도가  계곡을 따라 펼쳐진다.
우비를 입고 한 손엔 스틱을 짚고 한 손에는 우산을 받쳐들고 시간 반 이상 걷는 내리막길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물이 불어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더러 만나는 산목련의 수줍은 자태에  넋을 뺏기기도 하고 군데군데 매발톱, 산괴불주머니,창포꽃 등  야생화도 만나며  벗과  도란도란 묵은 정담을 나누며 걷는 빗 속의 트레킹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슴에 들어 찬다.

드디어 도착한 식당.
10 여가지의 자연 산채 나물이 뷔페식으로 제공 된다.
  꾀 큰 식당 규모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 것 같다.
자연에서 채취한 연한 나물들이 얼마나 간이 딱 맞고  맛있던지!
걷느라 적당히 시장하던 터에 정말 꿀맛으로 맛나게 먹으며  진한 토속의 입맛을 느낀다.

출렁다리를 지나  파로호 쪽으로 산책로가 나 있다는데 우리는 배를 타고 버스가 기다리는 반대 편으로 건너간다. 욕심 같아서는 호수를 따라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다음엔 1박을 하며 천천히 피부로 비수구미를 호흡하고 싶은  아쉬움을 남겨두고 떠난다.

여러번 갔던 평화의 댐을 둘러본다.
평화의 종 앞에서 인증샷도 찍고
한 시간여 넉넉히 시간을 주어서 주변의 비목 공원을 돌아본다.
이름도 없이 스러저간 호국영령들의 명혼에  감사의 묵념을 올리며 숙연해진다.

가끔 훌쩍 함께 떠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걸을 수 있을까? 못 할 것 같아 움츠려들던 마음이 할 수 있다, 아니 더 자주 해보아야지 하는 적극적 긍정의 마음으로 바뀐다.
등산화도 새로 사고 스틱도 두짝으로 새로 사야지.
집에 오는 길에  당장 새로 등산 용품을 구입하며 더 젊어지기로 마음 먹는다.
  그래 인생은  늙어 죽을 때까지 도전하고 행복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려니.
친구야 더 자주 가자.
다리에 힘 기르려면 내일 부터 더 열심히 운동도 해야겠다.

몇해  전만해도 계단도 못 내려가고 10여분 걸리는 아치산역 까지 서너번은 중간 참을 하고 쉬었다 갈 정도로 불편했던 다리였는데 
아 걸을 수 있는 축복!
일상의 기적을 눈물나게  감사한다.
사랑하시는 그 분의 은혜 앞에 무릎을 꿇는다.
또 하루  플러스 인생을 기록하며
감사의 기도로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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