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그리움, 그 언저리

조은미시인 2021. 5. 26. 07:54

















그리움 그 언저리
조 은 미

아침부터 잔뜩 하늘이 흐렸다.
비가 한 판 쏟아질 것 같다
서울 가는 날.
밭의 싱그러움을 이웃들에게 나눠주러 마음이 급해진다.
곧 한 방울씩  비가 돋는다. 미쳐 뜯을 새도 없어 가위로 싹뚝거려  봉지봉지 담는 마음이 흐믓하다.

며칠 있으면 그이 5주기 기일이 돌아온다. 평일이라 지방에 근무하고 직장 일에 바쁜 아이들이 함께 모일 형편도 안돼 각자 편한 시간 산소 다녀가라 이르고 나도 비를 거늘러 미리  성묘 길에 나선다.
다행히 한 판 쏟아지던 비가 멈칫하며 해가 나기 시작 한다.
그리운 이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문득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때로 관계에 상처 받아 마음 둘 곳 없을 때  뭔가 일이 실타래처럼 엉켜  복잡한 때 이곳에 오면 그이가 곁에 있는 듯 외로움도 스러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길을 달리며 그이와 나누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사랑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가 옆에 있는 듯 그의 숨결이 느껴지며 생시와 같은 마음이 된다.
"여보 사랑해, 보고 싶다"
가만히 속삭여 본다.
그의 식물성 같은 그 티없는  미소가 차 안에 가득 찬다.
갈아꽂을  꽃을 준비하고 그이 앞에 선다.
망자의 숲엔 늘 압도하는 위엄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평안이 있다.

우리 나이에 한 집에 살면서도 각방 쓰며 데면데면 하기 이를 데  없고 심하면 웬수 수준으로 지내거나 아예 서로 존재 조차 무시하며  함께 있어서 더 외로운 부부들이 이외로 많은 걸  보며 늘 그리움으로 추억할 수 있고  가슴에  아릿한 추억으로 사는 혼자가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나 싶다.
외로움 대신에  자유를 남겨주고 간 남편에게 사랑과 감사의  묵념을 올린다.
비석에 나란히 새겨진 그이와 내 사진이 다정히 웃고 있다. '이광세, 조은미 지묘' 라는 묘비의 글자가 가슴에 크로즈엎 된다.
  그래 난 그이와 이미 장사되었어.
나머지 삶은 새로  받은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거야.
그이의 부재가 내게 가시가 아니라 새로운 활기로 나를 세워가길 기도 한다.
하늘에서 평안히 안식하는 당신한테 걱정 안끼치도록 씩씩하게 잘 살고 있어.
여보!  당당한 내 모습  보이지?
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도 따라 웃는다.
비 갠 후  청자빛 하늘이 유난히 청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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