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은혜를 감사하며

조은미시인 2022. 4. 8. 09:22




은혜를 감사하며
조 은 미

태생이 약삭바르지 못해 남들은 아파트를 몇 번씩 옮기며 뻥튀기를 할 때 지금은 황금 싸라기 노른자땅으로 변한 잠실 5단지를 근 40 여년 전 2800만 원에 팔아 중곡동 구석 단독주택으로 배나 가까이 보태 이사한 후 오늘 현재까지 이 골짝을 벗어나지 못하고 붙박이 토박이가 되어 살고 있다.
지금은 이 집 팔아 그만큼을 더 보태도 잠실 5단지 아파트를 감히 들어가 살 엄두를 못낼 만큼 격세 지감이 느껴지지만 그동안 건강하고 빚 안지고 이만큼이라도 살만하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시어른 2분, 아픈 시누이, 친정 부모님, 말썽 많던 입양아 동생, 우리 4식구까지 8식구가 이 집에서 벅적대며 반생을 아무 탈 없이 살아 왔다. 비록 시절을 거스르며 재테크에는 빵점이었을지 몰라도 무탈하게 살아온 세월이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아차산 가깝고, 집 값 싸고, 동네 인심 좋고, 재래 시장 가까워 서민들 살기는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한 가닥 욕심 내려놓으니 사는 게 이리 편하다.

무슨 복인지 몇 해 전 가로수를 프라타나스에서 벚꽃으로 갈아 심더니 이젠 제법 벚나무가 탐스럽게 자라 바로 거실 잎에 휘늘어진 가지가 몽환적인 꿏구름 터널을 이루는 장관을 내 집 뜨락처럼 봄마다 누리는 횡재는 값없이 거저 누리는 은혜가 아닌가!
꽃속에 앉아 있으니 내 마음도 꽃을 닮아 화사해진다.
이 작은 은혜도 이리 감사한데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내 생명을 죽음에서 부활로 옮겨주신 그 분의 은혜는 어찌 말로 다 감사할 수 있으랴!

문단의 존경하며 가까이서 자주 뵙는 원로 선배님께서 조시인 글은 다 좋은데 속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의 고통이 없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진정한 시는 고통 가운데서 숙성하여 터져나온다는 말씀 이시리라.

한 집에 양쪽 부모님 모시고 몇십 년 산 그 긴 시간, 내 손으로 가까운 가족 7 분이나 하늘 나라로 보내며 내 안의 슬픔이 왜 없었을까?
한 가지도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 복잡하게 얼킨 관계들 속에 고통이 왜 없었을까?
그러나 고통을 고통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느끼지 못하고 늘 기뻐하며
살 수 있는 저력은 내 부족함을 붙들어 주시고 동행해주시는 그분에 대한 감사의 샘이 내 안에 촉촉히 넘치는 까닭이리라.
제대로된 시 하나 못 써내는 이름 뿐인 무명 시인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름의 무게에 눌려 아무 글이나 써내지 못 하는 고통에서 해방되 자유롭게 내 쓰고 싶은 글 맘대로 써도 누가 시비걸 사람 없는 자유함이 얼마나 감사한지!
사는 것이 은혜이고 축복임을을 고백하며 부활절을 앞두고 오늘 아침도 일렁이는 꽃 파도에 취해 감사로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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