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며칠 전 빈 집에 사람이 없어도 믿거라 소나무 전지를 부탁해 놓고 달라진 모습이 궁금하여 오전 일 보고 오후 5시가 겨웠는데 부지런히 채비를 차리고 시골집으로 달린다.
일주일 전 빨갛게 꽃망울이 졌던 작약이 그새 피었다가 졌나 싶어 마음이 더 바빠진다.
개화 시기가 짧아 작년에도 1년을 꼬박 기다렸던 꽃을 이렁 저렁하다 못 보고 놓쳐서 올해는 꼭 꽃피는 것을 보리라 작심하고 기다렸다.
단정히 이발한 소나무의 단아한 모습이 사랑스럽다.
주인이 없어도 정성스레 다듬어놓고 가신 남사장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앞마당과 잔디밭은 며칠 돌보지 않은 표가 여실히 드러난다.
마누라 뇌두고 몰래 만나는 애인하고 세컨 하우스는 생기는 날 부터 근심 덩어리라 하던가?
그새 마당의 풀들은 성클하니 입 내밀고 볼 꾀나 부어 유세를 떨고 있다.
그래도 어디 숨었다 나왔는지 대문 앞 화단의 양귀비 꽃 한 송이가 요염하게 피어 반긴다.
가느다란 허리 받쳐들고 고혹적인 입술 새초롬히 벌려 유혹하는 요사에 목석인들 넘어가지 않을까?
잔뜩 가슴 부풀리고 기다리고 있는 작약이 곧 비밀을 털어놓을 듯 입술을 달싹이고 있다.
백일홍은 목이 타 숨 넘어갈 듯 턱 받치고 껄떡 거린다.
옷도 채 못 갈아 입고 급한 녀석들 물부터 챙겨주고 텃밭을 돌아본다.
뜯어 먹기는 너무 어리던 상추 아욱들이 일주일 새 앞다투어 솟아올라 흐드러졌다.
씨 뿌려 그리 탐스럽게 자란 것이 고마워 한 잎도 소홀히 하기가 어려운데 저 많은 걸 누가 다 먹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제 각각 자기 집 상추만 해도 남고 쳐지는데 나눔할 데도 없고 상추를 많이 소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추 물김치 , 상추 장아찌들도 더러 담기는 하는데 당장 처리히기는 번거로운 일이다.
상추, 아욱을 한 아름 뜯어다 아욱은 깨끗이 씻어 물을 자작하게 비닐 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제 자리 잡아주고 상추는 저녁에 쌈으로 몇 잎 먹는다해도 처리가 대책이 안선다.
유투브에서 언젠가 본 기억을 되살려 상추 나물을 무쳐보기로 한다. 팔팔 끓는 물에 상추 대궁 부터 처 삼촌 벌초 하듯 잠깐 물에 넣었다 뺄 정도로 데처내 찬 물에 행궈 물기를 꼭 짠 후 쌈장, 참치액젓, 파 , 마늘, 빨간 청양고추 다져 넣고 통깨 뜸뿍 뿌려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 나물을 만드니 묘한 중독성에 젓갈이 자꾸 간다.
순식간에 푸짐하던 나물 한 접시가 다 없어지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상추가 너무 많아 웬수스러울 때 안성 맞춤의 적당한 처리 방법 이다.
열무 김치에 상추 나물, 싱싱한 상추 몇 잎 뚝뚝 뜯어 넣고 고추장에 들기름 두어 방울 떨어뜨려 양푼에 쓱쓱 비비니 얼마나 맛나던지!
요즘은 적당히란 말이 대충 슬쩍 슬쩍 봐준다는 부패를 조장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우리 말에 적당히란 말의 또 다른 뜻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딱 알맞은 정도를 이를 때 쓰는 참 여유있고 팍팍하지 않은 긍정적 의미의 좋은 말이다.
조금만 차고 넘쳐도 이리 신경이 쓰이는데 그저 의, 식, 주 걱정 없이 건강하게 먹고 살만 하면 됐지 결국은 가져가지도 못하고 다 놓고 갈 물질에 그리 엄한 욕심을 부리고 마음 불편하게 살 까닭이 있을까? 지나치게 겸손해도 남에게 업신여김 당하고 너무 교만해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사람이 가까이 오질 않고 너무 가난해도 불편하고 너무 돈이 많아도 그것 지키느라 걱정 근심이 더 많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내가 주인이 되어 누릴 수 있는 기쁨 안에 자족하며 살게 하심을 감사한다.
소슬한 찬 바람 사이로 합창하듯 그악스레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 소리마저 노랫가락처럼 정겹다.
평안이 가슴에 강같이 흐르는 밤!
잠이 소르르 눈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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