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은 미
나는 내가 참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내 글이 진솔한 내 삶의 고백이고 나를 나타내는 얼굴이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내가 쓴 글을 살펴보면 곳곳에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넘쳐난다.
그런데 과연 내가 글에서 나타낸 만큼 식물을 내 반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가? 자문해보며 그야말로 어설픈 사랑의 흉내만 내고 있음이 부끄러워진다.
한 달이면 반 이상은 외도로 집을 비우고 어쩌다 시골 집에 오랜만에 와도 눈 한 번 삐쭉 마주치고 무릎, 허리 핑계 삼아 하루에 한 번도 발그림자를 못하는 때가 많다.
옆집 젊은 안주인은 노상 호미를 들고 꽃밭에 살다시피 하면서 어디서 화초 몇 포기라도 얻어오면 마법사처럼
온통 식구들을 늘려 놓아 온 화단이 꽃 천지를 이루는데 나는 우정 많은 돈을 주고 여러해살이 화초나 야생화를 몇 판씩 사다 심어도 심는 한 해 잘 피었다 그 다음 해는 어찌 그리 다 사그러지는지! 그 집 모종과 내 집 것은 같은 종자가 아닌가 싶어 엉뚱하게 모종 탓을 하기도 한다.
그나마 그 정도라도 내 무심함에 비해 살아남아 주는 것 만으로도 감지 덕지다.
무릇 사랑이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님을 뜨락의 꽃들을 보면서 실감한다.
식물도 주인의 발 소리를 듣고 자라는 영물이다.
사람도 모름지기 진솔한 사랑을 하려면 상대에게 가슴으로 다가가 서로 현실의 필요를 채워주고 말로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사랑하는 이 앞에 머물러 몸으로 가까이 부딪치면서 헌신적인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쏟을 때 서로 간에 특별한 애정이 싹트고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것 이다.
많고 많은 사람이 있지만 연인이 되는 특별한 관계는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남들과 같은 정도의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남다른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지 않는다면 서로 엇박자가 나 관계가 버스러져 삐걱거리게 되고 상대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서로 미워하고 애증이 지나쳐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런 무심함과 무관심 앞에서 사랑은 결코 자라지 않는다. 어느새 사랑의 꽃밭은 황무지로 변하고 말 것이다.
함부로 사랑한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그만한 응분의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살면서 세상에 부러운 게 없는데 가을에 빨갛고 탐스럽게 익어가는 앞집의 사과 나무를 볼 때나 몇 대 얻어온 패랭이로 온 화단을 온통 패랭이 꽃밭으로 가꾸어내는 옆집을 볼 때면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고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우리 집 뜨락의 꽃들에게 나의 어설픈 사랑은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아 미안해진다.
사랑한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사랑을 고백하기에 부끄러움이 없으려면 좀 더 상대를 가까이 알아가며 몸이 서로를 느낄 수 있도록 늘 곁을 맴돌며 부지런을 떨어야 하리라.
나야말로 부지런은 고사하고 온전히 도시 사람도 아니고 시골 사람도 아닌 어정쩡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같은 눈 높이로 상대를 바라보며 서로 안의 서로가 되어 눈빛만 봐도 상대의 필요를 알아차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상대가 원하는 일에 기쁨으로 헌신하며 마음을 나눌 때 진정 서로 사랑하는 행복한 반려자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유치환의 시처럼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한 일이다.
내가 더 행복하기 위해서 주변의 것들을 사랑하며 살 일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시가 되고 사랑을 쏟는 만큼 내 삶이 촉촉하고 따사로워진다.
얼치기 사랑에서 벗어나 서로를 더욱 잘 알아가기 위한 노력과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손과 발이 되어 진정한 교감이 이루어 진다면 절로 내 뜨락의 꽃들도 사랑의 몸짓으로 화답하리라.
그래 전원 생활 5 년차가 넘는데 언제까지 얼치기 사랑으로 날마다 햇병아리 신세를 못 면해서야 사랑을 입에 올릴 자격이나 되겠는가? 스스로에게도 성실하지 못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반성해본다. 이제 어설픈 설익은 사랑에서 벗어나 진실한 사랑을 한 번 다부지게 해보고 싶은 되지도 않는 욕심을 가져본다.
일 같지도 않은 시답지 않은 일에 조금만 허리를 굽혀도 금방 신호가 오는 신체 나이를 생각하며 누구처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자조섞인 노래가락을 읊어본다.
어느새 일이 겁나는 나이가 되었다.
오늘 밤은 달도 숨었다.
오래 기다리던 비가 돋는다.
매캐한 흙 먼지 냄새가 코끝을 파고든다.
그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도 때가 있는 법이려니 더도 덜도 말고 이 모습 이대로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다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분수를 알고 몸을 아끼고 절제하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지혜가 아닐까?
가물에 콩나듯 찾아오는 비처럼 얼치기 사랑도 사랑이려니 자족하며 웃는다.
그래 세상 만사 욕심내지 말고 그러련 하는 여유를 가지고 더불어 살자.
적막이 가슴에 젖는 밤 감사가 송글송글 맺힌다.
살아있음이 감사여라.
아, 아름다운 날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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