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혼자 잘 놀기

조은미시인 2022. 8. 5. 11:40


혼자 잘 놀기
조 은 미

장마철 날씨는 변덕이 죽 끓듯 한댜
아침 나절 혼자 있기 겁날 정도로 천둥 번개가 치더니 지금은 언제 비가 왔냐 싶게 햇볕이 쨍쨍 내려 쬔다.
번개에 기지국이 또 사단이 났는지 전화기마저
앵돌아 토라져 기두망도 안한다.
전화를 걸 수도 받을 수도 없으니 온 천지가 닫혀버린 느낌이다.
핸드폰이 뭔 사치인가 싶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핸드폰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거의 의식주만큼이나 삶에 큰 비중을 차지 하고 있다.
전화가 안되니 전화할 때가 더 많이 생각난다.
괜스리 갑갑하고 초조해진다.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어 내가 핸드폰을 다스리는게 아니라 핸드폰이 나를 다스리는 것 같다.
이런 날 시간을 잘 보내고 놀기는 별식이나 해먹으며 부엌에서 서성이는게 딱이다. 이것 저것 냉장고를 털어 본다
어제 이웃에서 준 호박 2개에 생각이 미친다.
유투브에서 호박 요리를 검색하니 애호박 냉국이 눈에 띄인다.
듣도 보도 못한 생경한 요리법에 일단 호기심이 동한다.
호박으로 냉국을 하면 어떤 맛일까? 상상이 안간다.
구수한 경상도 입담이 요리보다 더 맛난 강사의 추임새에 당장 한번 따라해보기로 한다.
일단 호박을 가늘게 채 친다.
소금을 약간 넣고 절여놓았다 물기를 꼭 짜서 전자렌지에 4분정도 돌린다.
아삭아삭 익은 다음 꺼내 식혀놓는다.
미역을 물에 불려놓고 오이, 토마토, 당근은 채 쳐놓는다
진간장, 국간장, 멸치 액젓, 매실청. 식초를 각각 2 수저씩 넣고 , 레몬즙, 마늘, 파, 고추가루를 넣어 양념장을 만든 후 생수를 넣어 간을 좀 세다 싶게 맞춰둔다.
볼에 호박 볶은 것, 오이 채썬 것, 토마토, 미역 불린 것을 한데 섞어 담고 냉국을 부어 준후 통깨 술술 뿌리고 얼음을 띄워내니 무더운 여름철 입맛을 사로 잡는 호박 냉국 완성이다.
국이 있어야 밥이 넘어가는 식성인데 더운 때 뜨거운 국은 마땅찮고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데는 냉국이 최고인 것 같다.
강사의 억수로 맛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정말 냉국의 끝판 왕인 것 같다.
같은 재료라도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는 도전은 흥미롭고 신바람이 난다.
세멸치를 깔고 조린 깻잎도 대박이다.
멸치와 깻잎이 만나 환상적 궁합을 이뤄내는 맛은 깊은 중독성이 있다.
왜된장에 삭인 참외 짱아찌를 물에 빨아 꼭짜서 매실청 조금 넣고 통깨와 참기름에 조물거려 무쳤더니 꼬들꼬들 하고 아삭한 게 개운하다.
밑반찬으로 추천할만 하다.
취나물도 초고추장에 무쳐보니 의외로 상큼하고 입맛이 땡긴다.
단호박 쪄서 버터 썰어 얹고 피자 치즈 뿌려 레인지에 넣어 치즈 녹을 때까지 돌린 후 파슬리 가루 훌훌 뿌리니 그것도 그럴듯 하다.
호박 잎도 쪄서 강된장 자박자박 끓여 놓으니 별미 중의 별미다.
이것 저것 있는 재료 찾아서 상차림을 하니 주언부언 한상이 그득하다.
모처럼 푸짐한 밥상 앞에 앉아 행복하다.
음식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지 말고 놀이 삼아 새로운 방법으로 요리해보면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보낼 수 있다.
나이들수록 혼자 잘 노는 것에 길들여져야 한다.
혼자 잘 놀 수 있는 사람은 삶의 질이 높아진다.
할 일 없어 애꿎게 더디 가는 시간 탓 하며 외롬타지 말고 누가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도 말 일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스스로 즐기도록 하자.
늘 같은 날이라도 새롭게 만들어가며 활기차게 사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누리는 지혜이리라.
어느새 땅거미가 진다.
간 하루도 노루 꼬리 만큼이나 짧게 여겨진다.
오늘 하루도 또 그렇게 잘도 지나간다.
오랜만에 포식하고 한가롭게 뒹구는 여유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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