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빗속에서 나를 찾다

조은미시인 2022. 8. 2. 19:45














빗속에서 나를 찾다
조 은 미

하루 종일 비가 온다.
해가 반짝 나면서 실크처럼 부드러운 비가
나무를 간지른다. 빗소리가 음악소리처럼
부드럽게 가슴을 적신다.
모짤트의 마적 중에 '사랑을 느끼는 남자는'이 청아하게 흐른다.
시간도 빗 속에 쉬어간다.
비 오는 날은 까닭없는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기다리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루가 길기도 하다.
친구가 온다는 날은 아직 낼 모레인데 벌써 목이 길어진다.
남는 시간 적선하는 데는 독서가 최고이다.
오랜만에 책 속에 묻힌다.
눈이 마음보다 세월을 빨리 담아 조금만 집중하면 금방 흐릿해져 벌써 책을 가까이 하기가 부담스럽다.
귀로 듣는 것에 더 곁을 주다 보니 점점 더 책을 멀리하게 된다.
빗소리를 동무삼아 작심하며 책상에 앉는다.
김애자 님의 '봄, 기다리다' 수필집을
펴들고 그 안에 흠뻑 젖는다.
어찌 그리 시처럼 아름다운 수필을 쓰실 수 있는지.
깊은 사유와 연륜이 느껴진다.
책장을 넘기며 눈이 주는 한가로운 머무름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필의 진수를 맛보며 감동으로 가슴이 촉촉해진다.
주변의 모든 만남이 다 배움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아직 습작 수준에 머무르는 내 글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한 술 밥에 배부르랴.
그리라도 끊임없이 쓰다보면 나름대로 내 색깔에 맞는 어떤 무엇이 잡히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산다.
자기를 나티내며 인정 받을 때 행복하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고 탐심이 될 때 스스로 덫에 걸려 불행해진다.
욕심 없이 그저 쓰는 일에 마음을 다할 때 누군가 내 글에 공감하고, 내 글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잘 써보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더 글을 망치지 않을까 경계할 일이다.
시골집에 오면 늘 내 안에 가득 찼던 삶의 찌꺼기들이 비워진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하늘을 담고 산을 담는다. 산이 들어차고 하늘이 들어찬 가슴은 무엇에도 너그러워 진다.
비어진 마음의 공간들이 여유롭고 행복하다.
빈집은 나로 인해 채워진다.
갇혔던 공기가 순환되고 살아 있는 생명과 더불어 숨쉬며 삶의 생기로 채워진다.
서로 나누고 채워주며 사랑할 수 있는 무엇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이곳에 오면 마음도 생각도 열린다.
날마다 쓸 거리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매일이 같은 날이지만 새로운 눈으로 좀 더 자세히 주변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사랑으로 화답한다. 관심을 기울이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친밀히 말을 걸어온다.
비를 머금은 뜨락이 더 생기롭다.
나무도 묵은 때를 벗어 버린 듯 초록빛이 선명하다.
사랑의 교감은 서로를 세운다.
빗 속에 침잠하며 나를 찾는 시간.
여유 안에 빈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며
오늘도 아름다운 하루가 빗속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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