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단상

돌아가는 여유

조은미시인 2022. 8. 15. 11:05
















돌아가는 여유
조 은 미

지난 주 한창 휴가철 절정이라 1시간이면 족한 거리를 4시간이나 길에서 정체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은 일어나는 길로 새벽같이 길을 나선다.
어찌 그리들 부지런 한지!
도로는 벌써 부터 차들로 넘쳐나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행렬이 굼뱅이 구르듯 꾸물거린다. 조짐이 불길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기어가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중간에서 서종 IC로 빠져나오는 우회길로 접어든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니 그제서야 한적한 구도로를 만난다. 굽이굽이 물안개 피어오르는 한강을 끼고 달리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펼쳐진다.
서종에서 청평으로 이어지는 우회길은 봄이면 벗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룬다.
군데군데 예쁜 카페도 많고 먹을 거리도 많아 쉬엄쉬엄 눈요기하며 쉬어가기 알맞은 곳이다.
호젓한 길을 달리며 낭만에 젖는다.
스카이 타워의 아름답게 가꾸어놓은 정원에서 중간참을 한다. 너무 일러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지만 정자에서 바라보는 물안개는 선경이다.
새벽 부터 안개낀 수면의 물보라를 가르며 수상스키를 타는 멋진 모습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온다.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경이다.
쭉쭉 뻗은 단조로운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는 만날 수 없는 행운이다.
뺨에 닿는 바람도 코끝을 스치는 공기도 상큼하다.
목가적인 풍경에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온 듯 느긋해진다. 한가닥 긴장의 끈이 여유롭게 풀린다.
신청평 대교 길 모랭이를 도는 길가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갓 쪄낸 옥수수 파는 아낙도 정겹다. 아침 마수로 한 봉지 사드린다.
따끈한 찰옥수수가 맛나 보인다.
길 옆에 뾰루봉 전통 육개장, 갈비탕 간판을 달고 있는 자그마한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일찍부터 영업을 하는지 문이 열려있다. 출출하던 차에 얼마나 반갑던지.
아침을 먹고가야겠다 싶어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내가 첫 손님인가 보다. 젊은 주인이 반갑게 맞는다.
20년 이상 육개장을 손수 끓이시며 장사를 하셨다는 노모와 몇해 전 부터 취업이 안돼 포기하고 젊은 아들이 들어서서 가업을 이어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었다.
아들 덕분에 인터넷 판매도 하고 있다니 나름 맛집인가 싶어 기대되었다.
고사리, 버섯, 파, 토란 줄기를 넉넉히 넣고 고기 까지 푸짐하게 넣은 제대로 된 육개장이 갓 지은 밥과 함께 나왔다.
집에서 정성드려 끓인 깊은 손 맛이 느껴진다.
정말 밖에서 이런 진국의 맛나는 육개장을 먹어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국물도 하나 안남기고 얼마나 달게 먹었던지!
시장하던 판에 폭풍 흡입 후 느끼는 포만감, 세상 부러울게 없이 행복하다.
여행 길에 맛집을 만나는 것은 기쁨이 배가
된다.
배도 든든하고 눈도 즐겁고 낯익은 고향길을 달리는 마음이 넉넉하고 푸근해진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조급하고 빨리빨리 서두르는 것을 좋아한다.
에스카레이터의 잠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참지 못해 한 줄은 걸어 올라가는 사람을 위해 비워둔다.
한 줄로 타는 것이 하중 때문에 위험 하다고 두 줄로 타기 캠페인을 그리 벌려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다. 그런 부지런함과 열정이 잿더미의 전쟁 폐허 속에서도 이렇듯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조급함은 인생에서도 고속도로같이 쭉 뻗은 길을 내쳐 달리며 승승장구하는 빠른 승부를 갈구한다.
그러나 때로 고속도로인 줄 알고 접어든 길이 수많은 경쟁자들로 인해 혼잡 하기도 하고 난관에 봉착해 한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정체 구간이 길어질 때도 있다.
기다림으로 조바심치고 길 나선걸 후회 하기도 하고 분노와 좌절로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나 저제나 반신반의 하며 불확실한 미래에 길 뚫리기만 고대하며 한 길만 고집하지 말고 우회해서 목적지에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살펴볼 여유를 갖고 살면 좋겠다
고속 도로처럼 스피디 하고 뻗어 있는 곧은 길을 달리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은 아니다.
좀 늦더라도 우회해서 돌아가는 뒷길에서 아기자기한 행복을 만나면서 쉬엄쉬엄 가는 길도 빠르게 곧장 가는
고속도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인생의 또 다른 멋을 즐기며 살아가는 행복이 숨어있음을 기억하자.
느림 속에는 바쁘게 스쳐가는 삶에서는 만나지 못하는 섬세함과 깊이가 숨어 있다. 숨어있는 이런 보물들을 눈으로 만나고 손으로 만지고 가슴으로 따뜻하게 품고 살아갈 때 진정한 삶의 멋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보이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진정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게 감춰져 있다.
바쁠수록 돌아가는 여유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관계 속에서도 눈에 보이는 겉모습 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보아주고 인정해 주고 좀 돌아가더라도 기다려줄 줄 아는 아량과 여유가 서로의 관계를 신뢰로 잇는다.
돌아가는 여유!
정체된 고속 도로를 우회하며 만났던 소중한 기쁨에 감사하며 오늘도 싱그런 하루를 연다.


맛집 정보

http://m.tjfood.co.kr/product/%EA%B0%88%EB%B9%84%EC%9C%A1%EA%B0%9C%EC%9E%A5-1kg%EC%9D%B4%EC%83%812-3%EC%9D%B8%EB%B6%84-11000%EC%9B%90/221/category/1/displa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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