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만은 아닌
조 은 미
늦깎이로 등단해서 시인이란 이름표가 붙은지 그럭저럭 10년이 가까워 간다. 시집을 3권이나 냈지만 여전히 시를 쓰는 일은 어렵다. 나이드니 감성도 퇴화되는지 시상마져 마른다. 한 줄도 시가 안써져 아예 시 쓰는 일을 접어버리고나니 시에 대한 아쉬움이 미련으로 남는다. 남의 시라도 가까이 해보자 싶어 시 낭송에 입문한지 어느새 몇 개월이 자났다.
시 낭송을 새롭게 공부하니 늘 좋은 시를 가까이 할 수 있어 즣다. 낭송을 하기 위해서는 암기가 필수라 시를 외우려 애쓰다 보면 치매 방지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배울수록 재미있고 전문적인 낭송을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목소리의 색깔과 톤에 따라, 시를 해석하는 감성에 따라 같은 시라도 시에 대한 감동이 달라진다. 시 낭송은 시를 재 탄생 시키는 또 하나의 독립된 문학 공연 예술 장르로 자리잡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시 낭송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 새로운 배움에 열정을 쏟게된다.
8월도 다 가는 마지막 토요일, 문경에서 열린 여름시인학교에서 전국 시조낭송대회가 있었다. 몇 년씩 배운 고수들이 참여하는 대회이기에 경험삼아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두 달여 김상옥 시인의 백자부에 매달려 틈만 나면 연습에 몰두했다.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다. 당일이 되어 대회장에 도착하니 형형색색의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나온 참가자들로 치열한 열기가 느껴졌다.
대회 전 옛 선비들이 과거시험 보러 지나던 길목의 숲속에서 혼자 발성 연습도 하고 최종 마무리 연습을 한 후
될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대회장에 입장했다. 다행히 순번이 빨라 다섯 번째로 나가서 낭송을 하였다. 연습 때보다 더 잘 한 것 같아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순서가 지나니 느긋하게 다른 분들의 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연륜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목소리에 깊이와 울림이 다른 것이 느껴졌다. 혼자 할 때는 제법 잘 하는 것 같이 느껴졌는데 막상 비교하는 자리에 서니 나의 부족함이 눈에 보이고 대회 분위기도 체감되었다. 나름 입상을 기대하고 왔던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욕심임을 깨달았다. 어떤 분은 대상을 받을 정도로 목소리도 안정되고 호소력 있게 낭송을 잘 해서 몰입하여 듣고 있었는데 중간에서 생각이 안나는지 레코드판처럼 같은 낱말만 되뇌이다 내려가는 분도 있고 제목만 말하고 한 줄도 생각이 안나 기권하는 분도 있었다.나름 얼마나들 연습을 했을텐데 극도로 긴장하게 되면 그런 경우도 생기는 것 같다. 참으로 보는 사람이 다 애가 타고 안타까윘다. 어떤 분은 80이 넘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쩌렁한 목소리로 긴 시를 하나도 틀리지 않고 낭송해서 감동스러웠다. 대회가 끝나고 수상자를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절로 긴장이 되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신경을 집중했다. 입에서 침이 바짝 말랐다. 아무 등급에서도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았다. 드디어 대상 수상자의 이름이 호명되고 빵파레가 울리는 순간 맥이 탁 풀렸다. 그러나 곧 입상권 안에 들지 못한 서운한 마음을 추스린다. 다행히 같은 문하의 홍성자 시인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내 일처럼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진심을 다해 축하를 보낸다. 오래 한 우물을 판 댓가가 보상 받는 것을 보며 도전 의지와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비록 입상을 못해서 그간의 노고가 조금은 허탈하게 느껴졌지만 낭송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실전을 통해 맷집이 단단해지는 배움의 시간이었음에 감사한다.
실패에 좌절하지 말고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 아닐까? 오늘의 실패가 디딤돌이 될 것이다. 지도 선생님께서 평소보다 잘 했고 무대에 강해 앞으로 기대가 된다는 말씀에 격려가 되었다.
동상 바로 밑에서 탈락했다는 심사 결과도 저으기 희망적이었다. 비록 입상을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허전함은 있었지만 더 열심히 해보자는 결심과 젊어지는 생기로 충만하게 충전하고 돌아오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한술 밥에 배부르랴! 실패가 나를 더 강하게 붙드는 끈이 됨을 느낀다. 내일부터 새 힘으로 또 한 걸음 앞으로 나가도록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먼 길에 오고가는 것이 피곤했지만 고속 버스로 돌아오는 귀가길에 마음만은 편안했다. 불빛이 반짝 거리는 야경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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