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보내며
조 은 미
명절 풍속도 시대 따라 참 많이 변해간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류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하면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이고 가족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이번 추석은 사고가 유연한 멋진 신세대 시어머니여서가 아니라 내 몸이 부실하니 그저 아이들 하자는 대로 몸 편하고 즐거운 것이 명절이지 싶어 전 하나 안 굽고 부엌 일에서 해방된 민족으로 편히 지났다. 성묘도 각자 시간 나는 대로 따로 다녀왔다. 아버지는 명절 혼잡을 피해 찾아뵙기로 하고 인테넷에 사이버 대리 참배를 신청했더니 호국원에서 헌화하며 경례하는 사진까지 이메일로 보내준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돌아가시고 맞는 첫 명절인데 찾아뵙지 못해 송구스럽기 짝이 없으나 막히는 길에 운전하고 갈 엄두가 안나 며칠 뒤 한가할 때 찾아뵙기로 했다. 서운하고 죄송한 마음을 사진을 보며 달랜다.
추석날 아침 아들 내외랑 밥이라도 한끼 같이 먹을까 싶어 오라고 했더니 며느리가 어제 뵜으니 어머니 그냥 편히 쉬시라며 오후에나 모시러 오겠단다. 배려가 고맙고 늘 엽엽하고 지혜로운 며느리가 사랑스럽다.
저녁에는 딸이 엘리자벳 뮤지컬 표를 예매해 놓은 터라 일찍 밖에서 만나 외식하고 공연을 보기로 했다. 명절 땐 여기저기 돈쓸 일도 많을 텐데 곧 많은 거금의 티켓을 끊어 엄마를 편하게 해주려는 딸의 배려가 고맙다. 명절이라 문 여는 곳이 없어 밥 한 끼 먹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이태원의 Southside Parlor라는 양식집이 문을 열어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생전 처음 외국인들이 애용하는 이국적인 식당에서 색다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주문도 영어로 하고 주변 테이블에 다국적인들이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을 보니 마치 외국에 여행 나온 듯한 착각이 든다. 저녁은 아들이 쏜단다. 그 집에서 나오는 메뉴를 골고루 다 시켜 맛을 본다. 이름도 생소한 또띠아 종류, 햄버거, 감자칩 등이 그런대로 입맛에 맞아 한껏 입이 호사를 한다. 두 아이들이 용돈도 넉넉히 챙겨주고 며느리가 근육통에 좋다는 크림도 따로 선물로 챙겨준다. 나도 얼굴 스핀 마사지 기구를 준비해 답레로 전해주니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 마음 담은 선물은 사랑의 표시이기에 주고 받는 상호 교감이 있으면 더 애틋하고 진한 감동이 있다.
엘리자벳이 상영되는 Blue Square 신한홀은 3층까지 1800여석이나 되는 좌석이 한 자리도 여유 없이 매진 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문화수준이 어느새 이 정도까지 왔나 싶다. 2012년 초연 이래 이번이 5 번째 리바이벌 공연인데 꾸준히 롱런 히트 하며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 뮤지칼의 위력을 실감한다. 오스트리아 황후 이었던 엘리자벳 바텔스바흐의 극적인 삶의 스토리가 휴식 시간 포함 120여분 공연되는데 엘리자벳으로 분한 옥주연의 연기는 완전 무아지경으로 빠지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화려한 무대 의상과 환상적인 무대 배경 쟁쟁한 스타들의 황홀한 노래에 몰입해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뮤지컬과 하나 되는 감동의 시간이었다.
대충 줄거리를 정리해보면 오스트리아 엘리자벳 폰 바스텔 바흐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왕비로 자유분망하게 자라 어린 나이에 프린츠 요제프 황제의 눈에 띄어 황후가 되었으나 왕실의 답답하고 격식 있는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어머니 대공비 소피와 대립하며 갈등을 일으킨다. 마마보이에 심약한 황제로 인해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고 딸을 잃은 와중에 아들 루돌프까지 자살한 충격으로 거의 정신병에 이르른다. 죽음의 신은 늘 그녀를 유혹한다.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고 진실한 사랑과 자유임을 깨닫고 결국 궁을 뛰쳐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다 1898년 스위스에서 루이지 루케니의 칼에 의해 살해 당하는 비운의 왕비로 일생을 마친다.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와 더불어 눈, 귀가 행복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이번 추석은 참으로 의미있게 지나간다. 100년만에 가장 둥근 달을 볼수 있다는 슈퍼문을 기대했으나 구름에 가려 어렴풋이 달 그림자만 보이는 것이 아쉬웠다.
우리 인생도 그러리라.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또 다른 기대로 내일의 희망을 품고 열심히 살아가는게 삶의 순리가 아닐까? 전통에 얽매여 억지로 나를 매다보면 정말 소중한 것을 잃고 살게 된다. 형편과 처지에 맞게 물흐르듯 유연하게 대처하며 사는 것도 삶의 지혜이리라.
TV에서 종갓집 며느리들이 모여 정성스럽게 명절 음식을 만들고 가족, 친지들이 모여 다같이 차례를 지내는 모습이 참 근검하고 좋아 보인다. 힘들더라도 전통을 지켜가는 고집도 소중한 삶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 오면 해주려고 쟁여놓았던 랍스터와 언양불고기를 결국 집에서 해먹으라고 들려 보내는 완전 날탕 시어머니로 보낸 명절이었지만 서로 행복하고 감사함으로 지낸 의미있는 명절이라 자위해보며 자꾸 작아지는 내 부족을 덮는다. 모쪼록 남은 삶을
가족끼리 배려하고 사랑하며 서로의 허물을 덮어 주고 따사롭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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